[한국강사신문 한상형 기자] 아일랜드 속담에 ‘낯선 사람은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직 못 만난 친구를 만나 친구로 사귀어 가고 있는 (사)행복플랫폼 해피허브 김재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의 가치를 전하는 행복디자이너로서 행복을 강의하고, 행복한 글을 쓰며, 연결과 가꿈을 통해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과 소중한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5년부터 매주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 필자로 활동하면서 행복(幸福)은 행복(行福)임을 꾸준하게 제안하고 있다.

Q.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1986년부터 10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어요. 첫 직장은 해태였고, 그 후 변리사 일을 하고 싶어 특허법인에 들어가 특허관련 일도 했습니다. 1996년부터 학원사업도 하고, 교육사업도 했어요. 문화관련 마케팅 사업, 홍보 마케팅 업무도 했습니다. 그 후 2009년까지 CEO로 지냈네요.

2002년과 2003년에 문화 마케팅 회사를 경영할 때 어려운 일이 닥쳐 채 2년이 안되어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제 자의보다는 환경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그때 많은 경제적 타격과 정신적 충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책임져도 되는데 도저히 인간적으로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대표로서 책임을 지기로 마음을 먹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해인 2004년엔 정신적 공황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후배가 홍보회사를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같이 홍보회사 일을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2005년 4월 5일, 책상 앞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무작정 편지를 썼습니다. 사실 편지라기보다는 끄적거렸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신세한탄 같은 것 말이죠. 그렇게 끄적거리다가 누구한테 한 번 보내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제 이메일 친구로 등록된 사람이 이삼백 명 정도 있었는데, 이들에게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보냈죠.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말을 첫 문장에 썼습니다. ‘가끔씩은 이런 편지를 보내도 괜찮겠죠?’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날이 식목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문장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행복이라는 나무를 한 번 심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문득 그 날 보낸 편지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편지를 몇 번 더 써서 친구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세 달 정도가 지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편지 보낸 거 계속 보내보자.’ 그래서 2005년 10월 말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595회째 편지를 보냈네요.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쓸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정신적 환경도 되어야 하고, 물리적 환경도 되어야 하니까요. 제가 매주 월요일에 편지를 보내는데, 월요일이 명절이나 쉬는 날도 있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제 시간에 보내려고 애썼습니다. 한 번은 설 명절을 보내려고 시골에 있을 때 월요일이라 편지를 보내려고 눈보라를 헤치고 읍내 PC방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야 하는 소중한 존재이며 또 가장 중요한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김재은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는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더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김재은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입니다. 그래서 2013년 2월에 첫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누구부터 시작할까 생각하다가 저와 같은 대학을 나오고 다시 한의대를 들어가서 지금은 한의사를 하는 친구를 첫 인터뷰 대상으로 선택했어요. 첫 인터뷰 글이 2013년 3월에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누군가의 말을 온전히 다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걸 온전히 글로 옮기는 것이 바로 인터뷰죠. 이번에 만난 서울인문포럼 배양숙 이사장의 인터뷰가 67번째 인터뷰였습니다. 꾸준히 인터뷰도하고 편지도 보내다보니 지금은 많이 쌓였네요.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다보면 쌓이고 가치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에서 주목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누구나의 삶은 소중하기에 그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김재은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인거죠.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은 1988년생이었어요. 그런데도 인터뷰를 해보니, 정말 써야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죠.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1947년생이셨어요. 그러니 제가 인터뷰한 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는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되고요.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 더 신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그 배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것을 이해해준다면 또 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나갈 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서서히 ‘사람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째 쓰고 있는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는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만 보내기 때문에 ‘고도원의 아침편지’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는 확장성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써서 보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가 왜 당신 이야기를 들어야하지?’라고 반문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죠. 제가 인터뷰를 하는 첫 번째 목적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식사 한 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고통과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럴 때 나와 어려움을 함께하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많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Q. 각종 모임도 활발히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를 보내기 전 2002년과 2003년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나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누구나 어려움, 슬픔, 괴로움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연대보증을 잘못 섰다가 경제적 타격을 심하게 입은 사람을 만나보니, ‘내가 날린 돈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란 생각도 들었고요.

그 후로 각종 모임에도 참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애환과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를 보내게 되었죠. 제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지금은 오천 명이 넘습니다. 이 사람들과의 만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편지로 인해 저와 커뮤니케이션해왔다고 말할 수 있겠죠. 2007년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 100회 행사를 시작으로 지속적인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는 각종 세미나, 포럼 등도 진행하고 있고요.

2013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냥 걷고 싶은 날이었어요. 그냥 혼자 걸을까 하다가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에 이메일로 보냈죠. ‘제가 걸으려고 하는데, 같이 걸으실 분을 모집합니다. 언제 어디로 나와 주세요.’라고 말이죠. 저도 사람들이 몇 명이나 모일지 또 어떤 사람들이 오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모임에 나갔죠. 그런데 몇 명 왔는지 아십니까? 17명이나 모였습니다. 예측할 수 없던 일을 시작했는데, 17명이나 와서 참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엊그제 만났던 사람들이 아니라 5년 만에 본 친구, 10년 만에 본 친구 이런 사람들이었거든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행복한 발걸음 모임인 ‘행발모’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45번째 걷기모임을 마쳤고, 한 번 모일 때 7명에서 48명까지 참석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 말씀.

내년부터는 ‘김재은이 만난 사람’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으려 합니다.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주변에 미치고 있으니, 그분들과의 모임을 통해 세상에 더 큰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이죠.

아일랜드 속담에 ‘낯선 사람은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가 있을 뿐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세상에 낯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길을 걸어가다 낯선 사람과 어깨가 부딪히면 싸우기도 하고 운전하다 모르는 차가 내 앞에 끼어들면 욕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친구가 나를 살짝 밀쳤다고 화를 내진 안거든요. 왜냐하면 친구니까 이해하려는 마음이 먼저 생기기 때문이죠.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친구로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삶을 ‘세 줄’ 즉, 세 가지 ‘줄’을 중심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첫 번째 ‘줄’은 ‘밥 줄’, 두 번째 ‘줄’은 ‘놀 줄’, 세 번째 ‘줄’은 ‘줄 줄’입니다. 이 세 가지 ‘줄’로 인생은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줄’ 중에 ‘밥 줄’만 가지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문제만 가지고 인생을 살다가는 슬픈 인생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다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줄’은 바로 ‘놀 줄’과 ‘줄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놀 줄’과 ‘줄 줄’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경쟁과 경제적 문제만 중시하던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밥 줄’에만 매달려 왔던 것 같아요. 남을 이기는 것만 배웠지 남에게 주고 베푸는 방법은 몰랐던 것이죠. 지금도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고독 때문에 자살한 노인의 통장잔고를 보니 100억 원이 찍혀있었다는 기사도 있고요.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세 가지 ‘줄’ 중 가장 중요한 줄은 ‘놀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강사신문 한상형 대표(좌측)와 행복플랫폼 해피허브 김재은 대표(우측) <사진=한국강사신문 DB>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에드워드 스키델스키의 저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를 보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인생의 목적이 행복은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진짜 이유는 바로 ‘여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가 여가를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일은 안하고 놀 생각부터 하느냐는 비난 섞인 말부터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못 놀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죠. 돈을 왜 법니까? 가족들과 함께 여행가고 싶고, 맛있는 음식 먹으려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다 노는 것이거든요. 내가 괴로운데 누군가에게 기부할 수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놀 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놀 줄’을 알았을 때 다른 사람을 돕고 베풀 수 있는 ‘줄 줄’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받는 것에만 익숙해 남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하겠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은 돈을 벌면서 그때그때 기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야 주는 삶을 실천할 수 있고, 저 또한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 개의 줄은 너무 중요한데요. ‘놀 줄’을 잘하게 되면 ‘밥 줄’과 ‘줄 줄’도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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