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어느 정신과 의원에 중년의 여인이 찾아왔다. 얼굴을 보니 삶에 지친 빛이 역력하고 세상의 고통을 다 짊어진 듯 금방이라도 한숨의 봇물이 터져 나올 듯 했다. 어떻게 왔는지 묻고 몇 마디 나누다가 의사 또한 고민거리가 있어 자기 생각에 빠져 중년의 여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담지 않고 있다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그 여인이 서러움에 복받친 듯 울기 시작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이를 어찌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다. 어라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기쁨에 겨워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안도감과 함께 왜 우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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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정말 고맙다며 고개를 조아리며 연거푸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끝까지 들어준 게 처음이라며 감격해 했다. 그러면서 십년 쌓인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의사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여인의 얼굴은 억눌린 누런빛에서 환한 분홍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인을 통해 들은 작은 사례인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삶의 실상은 이러하다.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고민이나 삶의 번민들을 이야기하며 위로와 응원을 받고 싶은데 그럴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직장에서, 형제나 이웃 사이에서 잔소리 같은 말을 끝없이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툭하면 말을 끊거나 핀잔을 주기 일쑤이다. 그러니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듯한 고독한 삶이 곳곳에서 넘쳐난다. 관계는 엉켜있고, 풀지 못한 온갖 스트레스와 앙금들이 수북하게 쌓여 작은 일 하나에도 신경질이 나고 짜증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작은 갈등 하나에도 적대적으로 반응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 사이 경제대국이 되었다며 우쭐대는 사이에 외로움, 짜증, 조급함, 답답함 등이 연쇄적으로 작용하여 비판과 비난, 욕설 등이 난무하는 불행공화국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말하고 싶은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작 귀 기울이며 공감하는 사람이 없으니 삶이 어찌 즐거우며 신나는 사회가 되겠는가. 특히 요즘 조직이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이른 바 리더라는 사람들이 듣기보다 말하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 지극히 유감스럽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흐느낌, 절규, 하소연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이를 어찌할 것인가.

가정, 사회 어디에서든 이제 말하기에 앞서 귀를 열자. 귀 기울임이 있는 작은 관심 하나가 좋은 관계를 만들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물꼬가 된다.

왜 귀가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인지 생각해보자. 들으면 들을수록 서로 행복해진다. 진심어린 경청이 행복한 삶의 토대이고 우리의 미래의 희망이다. 이 가을, 병원을 찾아온 그 중년 여인처럼 활짝 웃는 얼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 출처 : 교차로 신문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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