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최인호 칼럼니스트] 2017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일 년을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누구나 이 시점이 되면 먼저 자신을 곰곰이 돌아볼 것이다. 씻어내려는, 아니 씻어내야만 하는 그 무언가를 곰곰이 돌아 볼 것이다. 혹시라도 그 씻어내야만 하는 무언가의 한가운데에 누군가를 향한 분노의 마음이 있지는 않을까 돌아보자. 그리고 그런 마음을 발견했다면 그 묶은 때는 날려 버리자. 무엇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누가? 내가. 누구를? 바로 나를...

누구나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어떤 누군가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랜 시간 마음 아파본 경험 말이다. 그때 나 역시 그랬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 했길래 그는 나에게 그토록 큰 고통을 주는 것일까?

20대 어디쯤이었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고, 밤새 심장이 뛰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나에게...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는 나에게 이런 아픔을 주는 걸까? 분명 누가 보아도 그의 잘못인데, 그는 나에게 사과는 커녕 본인의 잘못이라 인지하지도 못한 듯 했다. 밤새 고민한 나는 날이 밝자마자 약국으로 달려가 청심환을 사먹을 정도였다.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 때문에 끓어오르는 분노로 나는 거의 쇼크 상태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당해본 부당한 일에 심장이 뛰고,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내 인생의 크나큰 사건이었다. 약을 먹은 뒤에도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어 누워만 있어야 했고, 요동치는 심장 때문에 쉬이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분노는 그렇게 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며 나를 힘들게 했다.

최근 또 한 차례 이런 비슷한 경험이 생겼다. 내가 믿고 있었던 사람에게서 배신과도 같은 상처를 받은 것이다.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고, 왜 그 사람이 내게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 사건을 계속 되씹어보면 볼수록 고통스럽기만 했다. 20대 사건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내 온몸의 근육들이 하나씩 굳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상황을 20대 때의 나와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왜냐 지금의 나는 코치이니까. 부정적인 감정이 자꾸 올라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나는 이성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사건이 사실인지 내 판단인지를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 검열했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내가 별것 아닌 문제를 크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 이렇게 덤덤하게 생각하면서도, 더러는 다른 생각이 차고 올라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지?’...... 코치인 나도 때로는 완벽하지 않다. 어느새 분노는 스멀스멀 올라와 내 육체와 감정을 지배한다. 그래서 코치인 내게도 사건 수습대책은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며칠 후 지방 출장이 있어 그 상황에서 멀리 떨어질 기회가 생겼다.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나는 내 스스로에게 계속 셀프 코칭을 하며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난 무엇으로 인해 이렇게 분노하지? 그 본질을 들여다보니 ‘있는 사실’이 아닌 ‘내가 그렇다고 믿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사건의 부정적인 측면만 들여다보며 그 사람을 향해 적대감만 키우던 내 마음이 결국 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분노는 내 스스로가 선택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찬찬히 생각을 해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바로 분노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걸 크게 문제 삼아야 하나? 아니면 별것 아닌 것으로 덮어야 하나?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 그것을 결정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최종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건 내가 크게 화를 내야하는 상황이라고. 그때부터였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면서, 어떻게 나에게 이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그를 원망했다. 상대가 죽도록 미웠고, 그 일을 하나하나 뜯어내 분석하고, 해석했다. 내 모든 일과를 버려둔 채 제대로 먹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 분노를 일으킨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다. 결국 내 스스로가 화를 내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화를 내면 상대는 응당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는 절대 그것이 미안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사과 없는 그의 행동에 내 분노는 더욱 커져 갔다. 그렇게 나는 분노와 2주 동안 싸웠다.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다. 그러는 동안 내가 바라본 상대는 너무나 평온히 자신의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억울하게도 나 혼자서만 이렇게 아파하고 있었다니.

우린 상대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나에게 사죄하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그간 받았을 고통에 대해 충분히 보상을 해 줄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던가?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분노로 나는 여전히 나아가지 못하고, 상대는 자기 갈 길을 잘 가고 있다. 결국 내 인생을 내 스스로가 불행해지게 만든 것이다. 나에게 물어보자. 내게 상처를 준 상대방에게 내 삶의 운명을 결정짓게 할 것인가? 내 인생의 주체는 바로 나다. 이 불행한 삶에서 내가 나를 구해주자. 그것을 구해줄 열쇠가 바로 ‘용서’다.

먼저, 나의 관점을 바꾸자. 내가 분노하고 있는 그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내가 그렇다고 믿는 관념일 뿐이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당신이 외부 요인 때문에 고민한다면 그 고통은 문제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는 당신의 관점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느 순간에라도 그것을 없앨 힘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그 왜곡된 판단으로 감옥에 가두었던 나를 자유롭게 해주자.

용서는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용서는 바로 나에게 자유를 주기위해 하는 것이다. 혼자서 분노 때문에 얼마나 옥죄어 있었던가. 정작 상대는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그러니 선택해 보자. 상대를 용서하지 않고 그 분노를 계속 가슴에 두고 괴로워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라는 자물쇠로 나를 자유롭게 해방시켜줄 것인가. 부디 2017년은 자유롭게 나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최인호 칼럼니스트는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원 리더십과 코칭 MBA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우 및 스피치 전문학원인 인플로우(Inflow)를 경영하고 있다. TBN 교통방송, EBS, 리빙 TV 등 MC, 리포터, 성우, 아나운서로 활약했으며, 한국스피치강사협회 교육임원, 한국심리치료협회 전문 교수, 전남대학교 외래 교수(자기계발, 커뮤니케이션 기법 과목),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연수 스피치 담당 강사, 국제공인 NLP 마스터 코치, 한국코치협회 전문 코치, 팟캐스트 ‘긍정강사 최인호의 Inflow’ MC로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멋지게 이기는 대화의 기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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