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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격의 성 vs 가치의 성이동철의 하이엔드 마케팅 이야기

[한국강사신문 이동철 칼럼니스트] 저성장기 일본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업체가 있다면 바로 편의점 ‘세븐일레븐’일 것이다. 일본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신주쿠에 가면 세븐뱅크가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약 7대의 현금인출기가 있을 뿐 직원은 한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환하고 쾌적한 분위기의 세븐뱅크로 들어가 인출기 앞에서 스스로 업무를 처리한 후 돌아간다. 이 세븐뱅크가 정작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밤이다. 신주쿠 세븐뱅크의 벽면에는 이렇게 써 있다.

“상인 여러분,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은행의 주 고객을 짐작할 수 있는 시작이다. 안내문은 계속 이어진다. “밝고 편안한 세븐뱅크에서 오늘 매상을 여유롭게 입금하시고 유쾌하게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일본은 아직도 현금을 많이 쓴다. 때문에 신주쿠의 상인들이 밤 영업을 마칠 때면 현금이 가방에 가득 쌓인다. 이들은 노곤한 몸을 이끌고 세븐일레븐에서 어묵이나 삼각김밥으로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밖으로 나와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간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면서 현금을 입금한 후 종종걸음을 쳐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온다. 적어도 세븐뱅크가 생기고 난 후에는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위해서 편의점이 은행을 연 것이다.

일본 유통업체의 주목할 만 한 두 플레이어, 종합슈퍼마켓 이온과 편의점 세븐일레븐(세븐&아이)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가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 있다. 2013년에 이온의 매출이 6조3951억 엔인 것에 비해 세븐&아이는 5조 6318억 엔으로 이온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영업이익(영업이익율)을 비교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이온이 영업이익이 1,714억 엔(2.6%)에 그친데 비해 세븐&아이는 영업이익이 3,396억 엔(6%)으로 2배 이상의 격차가 난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객질(客質)이 다르기 때문이다. 객질이란 일본에서 유행하는 마케팅 용어인데, 고객의 차별하는 질의 의미가 아니라 ‘고객의 목적’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종합 슈퍼마켓인 이온은 ‘낮은 가격’이 곧 가치다. 따라서 고객들은 조금이라도 싼 것을 사러 온다. 객질이 좋지 않다. 반면 편의점을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편해서다. 세븐일레븐은 ‘편의성’이 최대의 가치다. 세븐일레븐이 주는 가치를 말해주는 일화들이 있다.

일본에는 냉장고가 없는 독신 가구가 많다. 집 앞에 편의점이 생기면 독신 자취생들이 페이스북에 이렇게 올린다. ‘우리 집에도 드디어 냉장고가 생겼다’. 세븐일레븐이 주는 가치는 즉시성, 편의성, 그리고 보관성이라는 것도 추가해야 할 듯하다. 가격이 아니라 가치가 중심이니 좀 비싸도 산다. 그래서 객질이 좋다. 이온과 세븐일레븐은 모두 PB제품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 PB들의 팔자는 완전히 다르다. 세븐일레븐의 PB는 가치 지향적이다. 기본가격보다 2배 이상 비싼 스페셜 아이템이 곧잘 팔린다. 하지만 이온의 PB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싸야한다. 이온에서는 싸지 않으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별화의 포인트는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포지셔닝 전략 중 가장 독한 전략은 나와 다른 브랜드를 이분화 하는 이분화 포지셔닝이다. 럭셔리의 대명사 샤넬은 이런 이분화 포지셔닝의 대가였다. 샤넬No.5를 출시할 때 썼던 네이밍, 용기 전략은 기존의 모든 향수가 쫓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전형적인 이분화 포지셔닝이었다. 당시 향수 이름은 ‘Au clair de la lune(달빛, Moonlight)’이나 ‘마르틴(Martine)’과 같은 환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이름을 짓는 것이 대세였지만 숫자를 적용한 건 샤넬이 최초였다. 

불황에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위축되어 가격에 대한 마케팅에 치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된다. 오히려 이때가 기존 업체들의 천편일률적인 가격 인하 광고에 질린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 제안이 먹히는 가치의 이분화 포지셔닝의 적기일 수 있다.

“훌륭한 제품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삶에 의미 있는 이바지를 했기 때문이다.” 캘로그 경영 대학원의 앤드류 라제기 교수가 말하는 의미 있는 이바지, 즉 가치는 불황기에 나와 다른 브랜드를 양분하는 가장 확실한 포지셔닝 기준이다. 문제는 더 싼 가격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기여를 어디에 할 것인지를 찾고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는 소신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사한 독점 영역의 개척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타이어 업체 미슐랭이 자동차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던 미슐랭 가이드도 이제 레드 시리즈와 그린 시리즈로 나누어 매년 200만부 이상이 팔리는 미식업계이 바이블이 되었다. 수준 높은 미각의 세계를 안내하는 미슐랭과 다른 타이어 업체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성 중에서 가장 영양가 없는 성은 가격의 성이다. 호시탐탐 노리는 적이 가장 많은 성이며 방어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가격의 공성전은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것이다. 가격 경쟁에 출혈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가장 방비가 잘된 성은 가치의 성이다. 나만의 가치가 있고 그가치를 알아주는 고객들이 함께 지켜주기에 가장 넘보기도 함락시키기도 어렵다. 또한 승리를 거두면 거둘수록 더 좋은 고객 가치를 거두는 법을 학습하게 된다. 

 

이동철 칼럼니스트는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센터 전략기획팀장과 전략사업그룹장 등을 지낸 하이엔드 마케팅 및 경영전략분야의 전문가다. 현재 교육부 창의인성 자문위원, 마이크임팩트 전속연사, 비전티움 아카데미 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TV조선 <프리미엄 코리아, 명품의 조건 >, YTN <생각이 바뀌는 의자> 등에 출연했으며, 저서로는 <한덩이 고기도 루이비통처럼 팔아라>, <밤을 경영하라> 등이 있다.

 

한상형 기자  han@lecture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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