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는 엄마 vs 끝내주는 엄마’ 김영희의 육아일기⑯

[한국강사신문 김영희 칼럼니스트] 내가 육아에 조금씩 자신이 붙을 때쯤이었다. 그 때 외둥이 승우는 겨우 생후 33개월이었다. 외둥이라 사회성을 빨리 키워줄수록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민 끝에 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또래 친구와의 관계는 부모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형제 있는 아이는 내내 붙어있으니 사회성이 저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자연히 체득한다. 사회성이란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인격, 혹은 성격 분류에 나타나는 특성의 하나로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 따위를 말한다.

과거에는 한집의 자녀가 7~8명씩이나 되었다. 그때는 굳이 아이의 사회성에 대해 별도의 케어가 필요 없었다. 자기들끼리 양보하고, 싸우고, 포기하고, 경쟁하며 자랐다. 그 대상이 없다는 게 외둥이에게는 아쉬운 점이다. 또래 친구를 사귀며 그런 점을 보완하길 바랐다. 막상 유치원에 보내려하니, 승우가 나와 떨어지기 싫어했다. 어찌 보면 그 어린나이에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한 달 여 동안은 유치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어른도 처음 가는 곳은 낯설고 어색하지 않던가? 승우는 태어나며 나와 잘 지내고 신뢰감도 쌓았다. 그것이 밖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탈 없이 잘 적응하리라고 섣불리 판단했다. 내 착각이었다. 유치원 문턱에서 걸렸다. 지금이야 갓난이도 유아원에 가지만, 그 시절 유치원에 갈 나이치고는 아직 이른 편이었다. 실제로 그 유치원에서 승우가 제일 나이가 어렸다. 승우는 그동안 유치원에 가는 동네 형들 모습조차 본적이 없었다.

대개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면 자기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텐데, 그런 부분에 대한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유치원에 간다는 게 승우에겐 엄마의 세계를 잃는 듯 한 고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한참 후였다. 승우의 의사와는 무관한 내 일방적 강요라고 볼 수 있었다.

유치원갈 때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떼쓰는 승우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맸다. 초보엄마였던 나는 이러한 부분도 승우가 혼자 견디길 바랐다. 난 코흘리개 어린아이에게 성인 수준의 인내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그 정도는 해내야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오산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일이란 거의 변수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승우에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나 보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고등학생과 씨름을 붙여놓고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어!’라고 응원하는 꼴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 나이에 극복할 수 있는 적정 수준 이하의 시련을 줘야 자신감이 생겨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내 경험 미숙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과오가 참 많다. 운동을 하려면 준비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승우도 미리 워밍업을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예를 들면 자기가 갈 유치원을 미리 답사해서 다른 형들이 생활하는 것도 보여주고 환경에 적응시키면 훨씬 적응속도가 빨랐으리라.

나는 여린 승우에게 ‘유치원 교육’을 빌미로 실수를 저지른 셈이었다. 성격 차이로 아이마다 적응력이 각기 다르다는 걸 그때는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초보 엄마의 미숙함이 여실이 들어났다. 유치원 자체의 커리큘럼은 좋은 편이었다. 소위 열린교육으로 4, 5 ,6 ,7세 나이 구분 없이 모집했다. 모두 섞어 학습했다. 그러니 제일 나이 어린 승우가 주눅이 더 들 수밖에 없었으리라. 원장은 유치원 재 설립 시 교육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 몇몇 나라를 돌아보았다 한다.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자율교육의 패턴이 그 예였다. 즉 각 6개 분야 선생님들을 각기 두었다.

각 교실에 상주하는 시스템이었다. 꽤 괜찮아 보였다. 나는 처음 설명회에 다녀온 후, 그 유치원 선택을 나름 뿌듯해 했다. 원장이 말하는 열린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확신을 갖고 선택한 유치원을 승우는 한 달여 동안 떼썼다. 당혹스러웠다.

“아이가 유치원에 처음 가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는 강제로 아이를 떼어놓으려고 하지 말고 우선 안심을 시켜야 한다.”고 이원영 교수가 말했다. “3세 미만은 여럿이 있어도 혼자 노는 시기다. 혼자 놀면서 다른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다른 아이가 있으면 사회성 발달이 빨라진다”고 했다. 당시의 나는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대해 과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이런 글들을 좀 더 일찍 봤다면 어땠을까? 나의 행동양식도 달라졌을 것이다.

아이와 더불어 부모도 교육에 대한 자기발전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의식 안에서 크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김영희의 『끝내는 엄마 vs 끝내주는 엄마(가나북스, 2015)』

 

김영희 칼럼니스트는 끝끝내엄마육아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 희망 멘토다. 4차산업혁명 강사, 미래학교 책임교수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끝내는 엄마 vs 끝내주는 엄마』, 『우리아이 부자습관』(공저)이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