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72세,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의 말

[한국강사신문 정헌희 기자] 페이스북, 카카오톡에서 2천 건, 4천 건씩 공유되며 널리 사랑받아 온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3년 넘게 120편의 인터뷰로 이어지고 있는 이 시리즈 가운데, 신간도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어떤책, 2018)』은 자기 분야에서 30년 이상 현역으로 일했고, 일과 삶의 영역 모두에서 통찰과 영감을 주는 평균 나이 72세 어른들의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90대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60대 요리 블로거 ‘정성기’부터 칠순을 맞은 현의 마녀 ‘정경화’, 99세 철학자 ‘김형석’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역시 자기 인생의 철학자인 독자들에게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선연하게 보여 준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은 갑질 고발과 세대 갈등이 증폭된 시대,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진짜 어른들의 말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예술가, 기업가, 철학자, 과학자, 종교인, 블로거 등 이 시대의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정력적인 어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은 직업은 서로 다르지만 한 권의 책에 인터뷰들을 모아 놓고 보니,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 나이 들어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적당히 일한다 ▲ 경쟁보다는 공생을 추구한다 ▲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 겸손하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교훈이랄 수 있는 이 다섯 가지 공통점은 윤여정, 니시나카 쓰토무, 노라노, 최재천, 정성기, 이순재, 하형록 등 16인의 호흡에 실려 무게감을 얻는다.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배우 윤여정은 “나는 공부는 못해도 숙제는 해 갔어요”라고 말하며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자신의 인생론을 들려준다. 젊은 시절 《구약성서》의 한 구절 “모든 일에는 때가 있나니”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은 그 구절을 “‘지금’, ‘여기’를 열심히 살면서 ‘그때’를 기다릴 것”이라고 해석하며 반드시 ‘때’가 온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말한다. ‘노오력’이라는 말로 열심히 사는 자기자신 또는 타인을 희화화하는 요즘 세태와는 반대 방향의 말들이다.

완벽주의자 이미지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중요한 건 불완전한 내가 불만스럽지 않았다는 거예요”라며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라고 말한다. 7,000여 제품을 취급하는 글로벌 기업 무인양품의 디자인 수장 하라 켄야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강조한다. 더 나아갈 수도 있지만 약간의 포기와 함께 그 정도에서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고. 세계가 인정하는 동물행동학자 최재천은 유구한 역사 속에 진화를 거듭해 온 동물들을 30년 이상 관찰한 결과를 들려준다. “혼자서 뛰면 어렵지만 섞여서 같이 뛰면 슬금슬금 앞으로 갈 수 있어요.”생존경쟁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숨통을 틔어 주는 말들이다.

120편의 인터뷰 중 왜 이 인터뷰들이 유독 사랑받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독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가를 유추할 수 있다. 오래 일하는 삶, 나이 들어서도 건강한 삶, 하루하루가 경쾌한 삶. 우리가 바라는 삶이다. 고령 사회를 다루며 청년 세대에게 노년 세대를 짐 지우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패착이 될 것이라 예측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삶을 사는 평균 나이 72세의 어른들 모습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우리의 동시대인으로서, 이미 우리에게 좋아하는 어른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에게 영감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또한 그들이 자기 인생을 오래도록 소중히 가꿨듯, 우리 자신의 인생도 소중함을 절감하게 한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은 타인과의 경쟁에 목매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우리,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게 힘과 응원이 되는 책이다.

한편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의 김지수는 질문하고 경청하고 기록하며 23년째 기자라는 ‘업’을 이어 오고 있다. 패션지 〈마리끌레르〉, 〈보그〉 에디터를 거쳐 현재 조선일보 디지털 편집국에서 문화부장을 맡고 있다. 패션지의 에디터일 때나 매일의 뉴스를 다루는 지금이나, 그가 쓰는 글의 핵심은 하나다. 바로 휴머니즘이다. 글을 쓰며 그는 옳고 그름의 선명함보다 틈새의 아름다움과 존재 안의 광야를 들여다보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에게는 오래도록 따라다닌 수식어가 있다. ‘문장의 배우’라는 타이틀이다.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 그리고 여배우들과의 인터뷰에 쏟은 특별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에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을 인터뷰하는 패션지 기자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저서로는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도시의 사생활』, 『나는 왜 이 도시에 남겨졌을까』외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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