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리더십⑤

파나소닉(구 마쓰시타전기)은 토요타와 손잡고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며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사진=뉴스웍스>

[한국강사신문 윤상모 칼럼니스트] 1980년대 소니의 ‘Walkman’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자 제품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당시 중, 고등학생이었던 나 역시 생일 선물로 가장 받고 싶었던 것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일본제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마쓰시타가 창업한 파나소닉(Panasonic)은 전자제품 시장에서 소니와 함께 업계의 선두주자였다. 이렇게 일본 제품이 전 세계를 제패하던 시절 마쓰시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일본의 번영은 진정한 번영이 아니다. 겉만 있고 뿌리가 없는 번영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미국과 유럽을 모방만 할뿐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전자 회사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제품을 복제하여 최소화로 축소하는데 모든 기술을 투입했다. 마쓰시타는 일본의 이런 복제 기술은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래에는 유능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회사와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쓰시다는 일본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정치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쓰시타는 사비로 70억엔을 들여 인재 양성소인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 : 마쓰시타 정치, 경제학교)’을 설립했다. 정치계와 경제계에 필요한 진정한 지도자(리더)를 양성해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 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마쓰시타 정경숙의 선발 기준은 학력, 스펙, 배경, 언변 같은 것이 아니다. 입학 조건은 ‘22세에서 35세 사이, 세상에 도움을 주면서 살려는 사람’이다. 입학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3000자 분량의 에세이를 내야한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면 통상 세 번의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이 되는데 설립 초기엔 선배들과 마쓰시타가 직접 면접 심사를 했다. 면접에서는 자신이 설계한 미래가 얼마나 실현 가능하고 진실한가를 평가한다. 지원자의 운(運)과 애교 또한 중요한 선발 기준이다. 여기서 운이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수가 좋다’의 의미가 아니다. 마쓰시타가 생각하는 ‘운(運)'은 하늘의 뜻을 말하며 순리를 따른다는 것이다. 순리를 따라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애교(愛嬌)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보이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뜻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은 세상을 밝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본 가나가와현 지가사키에 있는 마쓰시타정경숙 입교생들이 조회를 하는 모습. 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마쓰시타정경숙의 창립 이념이 담긴 ‘5가지 맹세’를 합창한다. <사진=아사히신문>

입학이 결정되면 3년간(18기 이전까지는 5년)의 훈련 기간 중 1년간은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한다. 3년간의 학비와 기숙사비는 무료이며 매월 20만 엔 정도의 생활비도 지급 받는다. 6시에 기상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숙사와 주변의 청소다. 마쓰시타는 설립 초기에 교장인 ‘숙두(塾頭)’를 맡았는데 종종 이렇게 말했다. “숙생들은 청소를 잘하고 있는가. 자신 주변도 청소를 못하면서 어찌 국가를 청소 하겠는가”

마쓰시타 정경숙은 필수 코스인 차도, 서도(서예), 검도, 좌선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도를 배운다. 강인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100Km 행군과 자위대 파견 교육도 받는다. 2년차가 되면 각자가 연구 과제를 만들어 스스로 공부한다. 공부는 이론이 아닌 농업, 공업, 임업, 낙농업의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배운다. 한 예로 중국 베이징에 있는 마쓰시타전기 공장에 파견되어 한 달간 중국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생활한다. 일본 시골 마을의 마쓰시타전기 대리점에서 판매 실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시골 마을로 농업 체험 학습을 떠난 한 숙생은 주지사가 주최한 파티에 초대를 받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주지사는 후일 미국의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이었다. 중의원으로 출마해 당선 된 그 숙생은 미국 정부와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일본직설」을 집필한 퍼시픽 21의 유민호 대표는 유일한 한국인 졸업생이었다. 유민호 대표는 자신의 연구 과제를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 리더십’으로 정하고 전 세계 125개국의 지도자를 만났다. 그가 만났던 인물은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 인도의 테레사 수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이었다. 물론 모든 경비는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지원했다. 마쓰시타는 “지식은 선생으로부터 배울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 배워야 한다”고 했다. 현장에서 스스로 배운 인재들이 정치와 경제계의 리더가 되어야 실현 가능하고 올바른 정책을 수립할 것이라는 마쓰시타의 철학이 담겨있는 말이다.

1979년 마쓰시타 정경숙이 설립된 이후 2010년 기준 국회의원 38명, 지방단체장 10명, 지방의원 24명이 당선되었다. 정경숙 출신의 후보들은 자신이 ‘마쓰시타 정경숙’출신 임을 자랑스럽게 포스터 프로필난에 기록한다. 마쓰시타는 설립 당시 “정경숙 출신 인물이 문부성 대신으로 들어가 제대로 된 인간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했다. 마쓰시타의 희망은 문부성 대신을 넘어 정경숙 1기로 입학한 노다 의원이 2011년 총리로 선출됨으로써 더 크게 이루어졌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일본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 졸업생들과 기업인들이 더욱 발전된 형태의 인재 양성소를 건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몇 달 전 지역의 한 신문에 ‘ㅇㅇ지역판 마쓰시타 정경숙’을 목표로 한다는 「ㅇㅇ 서당」의 설립이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지역 출신의 기업인이 후원하고 대학 교수들이 재능 기부의 형태로 참여한다고 한다.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인문, 교양, 예술, 자연과학, 국제학, 경영, 경제 등 다양한 강좌를 무상으로 교육하고 우수 수료생에게는 미국 연수 기회도 주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강좌가 개설된 것에 흐뭇하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었다. 해당 지역의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1년간 주 1회 수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한 조건과 수업 기간이면 그냥 ‘지역 대학생을 위한 무료 인문학교양 강좌’라고 홍보해야 한다. 대학생만을 위한 주1회 1년 교육이라면 ‘마쓰시타 정경숙’의 입학 조건과 교육 과정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주 1회 하는 대학 교수들의 강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젊은이들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세상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변화를 실감하는 순간 이미 지나간 트렌드일 경우가 많다. 우리의 미래는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달려있다. 수학의 공식처럼 초, 중, 고, 대학를 거쳐 직업을 갖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학 무용론’이 특정 계층을 질시, 폄하하기 위한 수단이던 시대는 과거의 이야기다. 미래 학자들은 인터넷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시대가 시작됐고 차츰 보편화 되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위한 인재를 양성해야 할까? 그 해답을 마쓰시타는 40년 전에 내 놓았다.

“세상에 도움을 주려는 사람에게 스스로 공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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