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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된 기능공 홍석기의 내게 힘을 준 3가지는?5개 전공·15년 강사 “열심히 했을 뿐이고”

[한국강사신문 홍석기 칼럼니스트] 정말 힘들고 지겨운 날의 연속이었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뜨거운 불을 쏘이면서 용접을 하고 쇳물을 녹이고, 기름걸레를 빨면서 선반(旋盤)으로 피스톤을 깎으며 땀방울을 흘릴 때,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탈수증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후 3시에는 우유에 소금물을 타 마셔가며 하루 종일 일을 했다. 저녁엔 야근을 하고 주말에는 특근을 했다. 한국의 산업경제가 용솟음치던 70년대 중반의 공장은 대부분이 그랬다.

장마와 폭설로 유명한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이나 배우겠다고 무작정 상경할 때까지는 촌놈이었다. 공고 전기과를 졸업하고, “기아산업(기아자동차 전신) 직업훈련소”에서 1년 동안 용접과 판금 등 기술을 배운 후 시흥 소하리에 있는 기아자동차공장에 들어갔다. 한국경제가 급성장을 이루던 시기에 “산업발전의 역군”으로 어린 나이에 현장에서 기계를 만지고 기름을 닦으며 피를 흘릴 때도 많았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나는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땀과 눈물을 흘려 가면서, 일하고 공부했다. 시흥동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공장을 다녔다. 3년간 독학 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다. 그 당시 컴퓨터를 공부한 사람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신(神)도 모른다는 아시아 최고의 회사, “코리안리 재보험”에 입사했다. 그 곳에서 15년간 정보시스템부, 인사교육부, 보험영업부 등에서 근무했다. 그 동안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뉴욕 보험대학에 연수를 다녀왔다. 일 하고 공부하면서 책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은 여전했다.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던 1998년, 회사의 구조조정 실무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날 때는 잠시 마음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중소 벤처기업에서 4~5년간 직장생활을 더 한 후, 3권의 책을 쓰고 3권의 원서를 번역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강의를 하면서 인생 2막이 시작 되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곳에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두 개 대학에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과목을 15년째 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하면서 좋은 분들과 함께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강사협회’를 설립하고 3대 회장을 지냈다. 특히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팔, 미얀마, 몽골 등에서 온 공무원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여러 언론 매체와 기업체 사보에 칼럼을 쓰고 있다. 그래서 나의 전공은 전기, 기계, 컴퓨터, 보험, 커뮤니케이션이다. 25년간의 직장생활을 바탕으로, 감성리더십, 변화혁신,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의 주제는 물론, 사원 채용면접 방법이나 직업철학과 윤리경영 등 독특한 주제의 강의도 하고 있다.

어렵고 복잡한 생활을 해 오는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힘을 줬던 것은 책과 음악, 그리고 신문이었다. 하루 종일 일 하고 야간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피곤한 몸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연탄불이 꺼져가는 냉방에서 이불을 덮고 책을 읽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과학의 역사(The history of science), 제로섬 사회(Zero sum society) 등을 읽으며 영어 사전을 찾는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The art of living)이나 아우렐리우스와 세네카의 철학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는 시간에는 차가운 방바닥의 기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인간의 행복과 삶의 가치를 느끼는 데 고통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쉽고 재미있는 소설도 좋았지만, 어렵고 지루한 원서와 두꺼운 책들은 괴로운 슬픔의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

어려서 공장을 다닐 때, 쉬는 날에는 시내에 나와 찻집을 찾았다. 화려하고 멋진 청춘들 틈바구니에 몸을 숨긴 채, “혹시, 내 몸에서 땀 냄새라도 날까?” 두려운 마음에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눈을 감고 듣는 비틀스의 노래와 영화음악을 통해 클래식을 접하게 되었다.

귀가 멀어 자살을 하려고 유서를 쓰다가 더 좋은 음악을 작곡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후, 최고의 음악을 남긴 베토벤, 35년의 짧은 생을 마치고도 600곡이 넘는 음악을 남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 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는 이런 나의 기쁜 마음을 알고 있을까? 특히,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나 브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일주일만 듣지 않아도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고되고 피곤할 때, 소화가 안 되고 우울할 때, 모든 게 귀찮아지고 희망이 사그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특별히 그리워지는 음악들이 있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 중 “아침”이나 하이든의 “종달새”는 죽을 때까지 매일 듣고 싶은 욕심이다. 사람이 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복이며 기쁨이다. 수억 원의 돈을 준다고 해서 그런 기쁨을 맛볼 수는 없다.

끝으로 힘을 보태 준 건 신문이다. 일반적으로 “신문을 본다”고 말하지만 나는 신문을 자세히 읽는다. 마음에 드는 칼럼이나 논설부터 시작해서 재미있는 기사나 훌륭한 사람들의 성공담, 유능한 기업가들의 도전과 실패, 세계적인 리더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등에 집중하면서 위로를 받고 도움을 얻었다. 특히, BBC, CNN, NY Times, Al Jazeera 등 외신을 접하며 날마다 좋은 칼럼과 세계 흐름을 읽는 것은 강의 소재를 찾아내고 준비하는데 더 없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최근 10년간은 매일매일 들어오는 신문들을 모았다가 주말에 별도의 시간을 내어 스크랩을 해 둔다. 중요한 내용은 두세 번 반복해서 밑줄을 쳐가며 읽는다. “뭐 대단한 내용이라고 오려 두고, 온 방을 어지럽히며 밑줄 쳐가며 암기까지 하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아마도 죽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 하랴?

요즘도 간간이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번역을 하고 강단에 서는 즐거움은 ‘강사’라는 직업에 대한 보람과 존재의 가치, 삶의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홍석기 칼럼니스트는 기업교육 전문 강사이자 서울디지털대학교 겸임교수다. 한국강사협회 3대 회장을 역임, 코리안리 재보험(주), 데이콤ST에서 근무했다. (주)스카우트 부사장을 역임했다. 최근 동국대학교 APP과정 “2018 베스트 티쳐 상(Best Teacher Award)” 수상했다. 저서로는 『오늘도 계획만 세울래?』외 4권과 번역본으로 『글로벌코스모폴리탄』외 2권이 있다.

 

홍석기 칼럼니스트  skhong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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