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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배우는 리더십 - 메디치가문 이야기 1편 “미래를 내다본 후원자, 로렌초 데 메디치”리더십이란 무엇인가①

[한국강사신문 윤상모 칼럼니스트] 15세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의 350여 년간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통치를 했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메디치 가문은 그들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수많은 인문학자와 예술가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인문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피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메디치 가문의 3대 통치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 역시 가문의 전통에 따라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로렌초는 자신의 정원을 피렌체의 예술 지망생들에게 개방해 예술 작품을 연습하도록 했다.

어느날 로렌초는 정원을 산책하던 중 조각 연습을 하고 있던 한 소년을 만난다. 그 소년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사냥과 목축의 신 파우누스의 얼굴을 조각하고 있었다. 로렌초는 그 소년에게 “늙은 할아버지의 이빨치고는 너무 가지런하지 않니?”라며 한 마디를 건네고는 공원을 떠났다. 다음날 정원을 산책하던 로렌초는 그 소년이 조각한 파우누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가지런하던 이빨은 모조리 빠져있고 잇몸까지 허물어져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렌초는 그 소년의 천재성을 알아보았고 소년을 불러 어디 사는 누구이며 어떻게 조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소년은 피렌체 외곽의 시골 마을에 살며 어머니는 어릴 적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광부인데 아버지가 자신을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아버지의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다고 했다. 소년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로렌초는 소년 아버지의 동의를 구해 자신의 양자로 입양했다.

로렌초는 그 소년에게 조각대신 인문학 교육을 시켰다. 로렌초의 저택에는 폴리치아노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들이 있었다. 소년은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미학,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을 배울 수 있었다. 2년간의 인문학 공부를 끝낸 소년은 20대 때부터 르네상스 시기 3대 천재 예술가로 불리게 된다. 그 소년의 이름은 바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다.

오타비오 바니니의 작품 <위대한 로렌초와 당대의 예술가들>, 로데초 데 메디치와 미켈란젤로가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모습,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 박물관 소장 <사진=한국경제 매거진>

로렌초가 미켈란젤로에게 처음부터 조각 공부만 시켰다면 미켈란젤로는「천지창조」「피에타」「다비드상」과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천재 예술가가 아닌 남들보다 조각 기술이 조금 더 나은 평범한 예술가로 남았을 것이다. 필자 역시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안에 위치한 「피에타」를 본 순간 미켈란젤로가 왜 천재 예술가로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시스티나 성당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대작 「최후의 심판」역시 미켈란젤로가 받은 인문학의 영향을 확인 할 수 있다. 최후의 심판은 예수님이 죽은 자들을 심판해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지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카론은 지옥행 배에 타지 않고 도망가려는 자들을 노로 후려치고 있다. 저승을 가보지 않은 미켈란젤로가 지옥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노를 후려치는 카론의 모습은 단테가 지은 「신곡」의 지옥편 3곡에 나와 있다. 카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등장한다. 신화속의 카론은 죽은 자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평범한 노인으로 나온다. 단테는 카론을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지옥에 가기 싫어 늑장을 부리는 사람들을 노로 후려치는 모습으로 창조했다. 단테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그림에 카론을 지옥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재창조했다.

미켈란젤로의「최후의 심판」중 오른쪽 아랫 부분. 지옥에 가기 싫어 늑장을 부리는 자들을 노로 후려치는 카론의 모습 <사진=네이버블로그>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은 세상 만물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든다. 하느님은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코에 입김을 불어 넣어 생명을 준다. 만약 아담이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누가 봐도 노인과 젊은 남자의 동성애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일 것이다. 기독교가 전 유럽을 지배하던 중세 시절, 동성애는 남녀가 만나 2세를 낳으라는 하느님의 율법을 어긴 중대한 범죄로 다스려졌다(1960년대까지 영국에서는 동성애자로 밝혀지면 감옥을 가거나 생물학적 거세를 당해야 했다).

미켈란젤로는 성경의 내용대로 따라 그리는 평범함을 뛰어넘어 하느님이 손가락을 통해 아담에게 생명을 주는 모습을 창조해냈다. 「천지창조」속의 하느님과 아담과의 첫 만남은 1980년대 전 세계에 SF영화 신드롬을 일으킨 「E.T」에도 영감을 주었다. 주인공 소년 엘리엇은 지구에 내려온 외계인 E.T의 이상한 외계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E.T와 손가락을 마주친 순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속의 하느님과 아담 <사진=나무위키>

만약 지금의 우리가 예술에 천재적 기질을 가진 청소년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후원할까? 아마도 서울 명문 대학의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게 하거나 외국의 유명한 예술대학으로 유학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로렌초는 소년 미켈란젤로에게 예술의 근본이 되는 인문학 교육을 먼저 시켰다. 그리하여 평범한 예술가로 남을 번한 미켈란젤로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작품은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그리고 영화인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았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통찰력은 인재를 후원하고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후원’이 어떤 것인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값진 문헌에 아낌없이 돈을 사용했다. 지금 우리 시대, 아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를 완성한 것은 로렌초가 학문 발전에 후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 인문학자 폴리치아노, 로렌초 데 메디치에 대한 추도사 중에서

 

윤상모 칼럼니스트  hp13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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