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1974년 12월 5일,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6학년 때이다. 지금부터 무려 42년 전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날은 누구나 달달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10분 거리 남짓 떨어진 집에서 밥을 먹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 언덕배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아뿔싸, 저만치 학교에 검은 연기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불이 난 것이다. 순식간에 건물은 전소되었고, 교실에 있던 모든 것들은 잿더미로 변했다.

가난한 형편에 책가방 대신 책보를 매고 학교에 다니다 5학년이 되어서야 어머니는 큰맘 먹고 책가방(그것도 가죽이 아닌 비닐로 된)을 사주셨는데, 바로 이때 화재로 그 책가방도 불에 타고 말았다. 학교가 불이 난 것보다 나에게 무엇보다 소중했던 책가방이 불탄 충격에 1주일 남짓 몸져누웠고, 담임선생이 집에 병문안을 오기도 했다.

얼마 전 아파트의 재활용 분리수거 하는 날, 그중에 멀쩡한 가방이 있는 것을 본 순간 초등학교 시절 그 책가방의 기억이 떠올랐다. 버려진 그 가방이면 아마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사용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실하고 좋은 가방이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세상을 살고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산업화 시대를 통해 고도성장에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물건이 귀한 줄 모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학교 교실에 버려진 학용품이며 문구가 넘쳐나도 찾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새로 사고 또 사고 그러다 싫증이 나면 유행 탓을 하며 금방 버린다.

푸른 별 지구는 이미 인간들의 마구잡이 횡포에 가까운 남용으로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다. 지진 등 천재지변도 심상치가 않고 식량이나 마실 물도 그리 녹록지가 않다. 자원은 물론 환경 등 무엇 하나 우리 미래 세대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본주의를 필두로 한 인간들의 탐욕의 무한확장이 낳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삶은 잘 보이지 않고, 돈과 상품, 체면과 겉치레만이 세상 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러다보니 삶은 불안하고 불만에 불평이 끝없이 이어져 전보다 물질은 풍요로운데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가두어 버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그냥 살아가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뭔가 다른 방식의 삶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물질(what) 대신에 삶(how)이 우리에게 들어와야 한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져야 한다. 나는 그것을 좋은 삶이라 부른다. 돈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좋은 삶이 우리와 함께 해야 한다.

좋은 삶이란 많은 이들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 바랄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며, 행복이란 단순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건강한 태도이자 입장이 된다(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등). 우리가 함께 좋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면 그때의 중요한 키워드는 ‘충분’과 ‘만족’ 그리고 ‘함께’가 되어 ‘더불어 지속 가능한 삶’을 향해야 한다.

눈부시게 좋은 날, 우리가 살아가야 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 행복한 삶에 대한 화두를 세상에 던진다. 아직도 그 불타버린 책가방에 대한 안타까운 추억을 간직한 채.

※ 출처 : 교차로 신문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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