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리더십⑩

[한국강사신문 윤상모 칼럼니스트] 노파는 여느 때처럼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잠을 청했다. 잠이 깊어질 무렵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에 노파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지난날의 악몽 같던 경험들이 순식간에 주마등처럼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노파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부족 사람들을 깨웠다. 노파의 비명 소리에 잠을 깬 칭기스칸은 이것이 적의(敵意)에 가득 찬 메르키트족 기마병들의 습격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 차렸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메르키트 족은 칭기스칸의 보르지긴 족에 뼛속 깊이 원한을 품고 있었다. 칭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메르키트 족에 시집가던 신부를 납치했다. 칭기스칸은 납치된 어린 신부, 후엘린에게서 태어났다. 몽골 족에게 원한이란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의무였다. 오래 전에 납치되어 적장의 아이들을 낳은 나이 많은 여자를 되찾아오는 것은 보르지긴 족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다. 보르지긴 족장의 아들에게 시집온 어린 신부가 메르키트족이 원하는 복수라는 것을 칭기스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몽골의 전사들 <사진=wikimedia>

칭기스칸은 적군들이 마을로 들이 닥치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남은 시간은 10분이 채 안될 것이다. 칭기스칸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식구들을 포함해 십여 명이었다. 도망에 필요한 말의 숫자는 충분치 않았다. 데리고 갈 사람을 정해야 했다. 광활한 대지에는 숨을 곳이 없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습격자들의 추격 속도를 늦추는 방법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부족 간의 전쟁에서 습격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주 목적은 아녀자들일 것이다. 칭기스칸은 신부인 부르테와 계모 그리고 습격을 알린 노파를 두고 가기로 했다. 기마병들은 주 목적인 부르테와 전리품으로 여자 두 명을 발견하면 추격의 속도를 늦출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십대의 어린 나이지만 칭기스칸은 부족을 이끄는 족장이었다. 

부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적이 원하는 것을 내주어야 더 많은 부족민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칭기스칸이 내린 결론이었다. 칭기스칸은 차후에 힘을 모아 아내와 남겨둔 여인들을 반드시 찾으러 갈 것이라고 신께 맹세했다. 칭기스칸은 부녀자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부족 사람들을 데리고 통트는 새벽을 뚫고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메르키트 족은 칭기스칸의 예상대로 추격을 늦추었고 결국엔 칭기스칸 일행에 대한 추격을 포기했다.

칭기스칸은 아버지가 독살된 후 같은 부족민에게서 버림받았다. 칭기스칸은 들쥐를 잡아먹고 식물의 뿌리를 캐며 힘겹게 살았던 마음의 고향, 부르칸 칼둔의 숲속으로 돌아왔다. 칭기스칸은 몽골인들의 절대 신 ‘영원한 푸른 하늘’에게 자신과 부족민을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적의 습격을 알려주었지만 자신은 적들에게 사로잡힌 노파에게도 용서와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고 하늘에 부탁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부르테를 찾아 올 방법을 알려 달라고 사흘 밤낮으로 기도했다. 부르테를 되찾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은 칭기스칸에게 부르칸 칼둔을 흐르는 세 개의 강을 통해 길을 알려주었다. 칭기스칸은 가장 멀고 험한 세 번째 강을 선택했다. 그 강은 아버지의 안다(영원한 친구)인 옹칸을 향한 길이었다. 칭기스칸은 옹칸이 자신의 하급 부하로 들어오라는 제의를 여러 번 거절했었다. 칭기스칸은 옹칸의 부하로 들어가 부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약탈 전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부르테를 하루 빨리 구하기 위해서는 옹칸의 힘이 필요했다.

칭기스칸은 옹칸을 찾아갔고 옹칸은 칭기스칸을 기쁘게 맞았다. 메르키트 족에 구원(舊怨)이 있던 옹칸은 칭기스칸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어릴 적부터 칭기스칸의 안다였던 자무카도 부족을 이끌고 합류했다. 옹칸의 대부대와 자무카의 정예병 그리고 복수의 칼을 갈던 칭기스칸의 연합군은 메르키트 족의 야영지를 기습했다. 메르키트 족은 싸움을 포기한 채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칭기스칸은 아내와 계모 그리고 노파를 찾아 메르키트 족의 모든 게르(몽골 천막)를 열어 젖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칭기스칸은 부르테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 사람처럼 사방을 돌아다녔다.

나이 많은 적장은 부르테를 자신의 수레에 싣고 도망가고 있었다. 부르테는 처음엔 메르키트 족을 공격해온 기마병들이 어느 부족인지 알지 못했다. 부르테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칭기스칸 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부르테는 수레에서 뛰어내려 칭기스칸의 목소리를 향해 어둠속을 달렸다. 칭기스칸과 부르테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칭기스칸은 왜 아내를 버리는 비정한 선택을 한 것일까? 그것은 800년 전 몽골 부족 간의 전쟁의 목적과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몽골 전쟁의 대부분은 복수와 약탈이 주 목적이었다. 몽골에서 ‘복수하지 않는 족장’은 족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원한이 있는 부족에게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몽골의 전사들은 주군의 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을 가장 큰 충성으로 생각하고 반드시 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칭기스칸이 이슬람 국가인 호라즘의 술탄, 무하마드를 잡아오라고 명했다. 칭기스칸의 충신이었던 수부타이와 제베는 3000Km 이상 추격한 끝에 무하마드의 목을 들고 돌아갔다.

그 추격의 과정 속에 러시아, 헝가리 등의 동유럽이 몽골에 정복되었다. 칭기스칸이 아내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부족민을 버리고 가족만 데리고 도망갔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메르키트족 기마병들은 명을 받은 부르테를 잡기 위해 칭기스칸 가족을 끝까지 추격했을 것이다. 숨을 곳이 없는 광활한 대지. 모두 사로잡힐 것이다. 몽골의 방식대로 칭기스칸과 남자들은 처형될 것이고 아내와 여자들은 첩이나 노예가 될 것이다. 버리고 간 부족민은 모두 흩어져 결국엔 부르테와 가족을 되찾을 방법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칭기스칸이 울분을 삼키며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둔 것은 가족과 부족 모두를 살리기 위한 비장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결정의 순간과 마주한다. 그 중 단시간 내에 중요한 결정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들고 어렵다. 우리는 그것을 ‘결단’이라고 한다. 칭기스칸은 적이 쳐들어온 급박했던 순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했고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참고자료 :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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