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분주한 일상에 쫓겨 사는 삶을 사노라니 요일 개념이 없이 살아 온지 꽤 된 것 같다. 주말에도 각종 행사나 산행 등으로 집에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으니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잠깐 들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 주 중에 일요일은 조금 다르다.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집안청소와 빨래이다. ​설거지는 해온 지 십 수 년을 헤아리니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 ​어쨌거나 기꺼이 즐겁게 한다.

오늘은 그 중 빨래이야기를 하려 한다. 요즘이야 세탁기가 웬만한 빨래는 척척 해치우니 힘들 것은 없다.​걸레나 특별히 손빨래가 필요한 경우에나 직접 빨면 될 뿐. 세탁, 행굼 후 탈수까지 마친 빨래는 탈탈 털어 빨래걸이에 널게 된다. 지금이야 그렇게 하지만 결혼 초기엔 대충 뭉친 채로 널었다가 잔소리깨나 들었던 기억도 있다.

문득 왜 빨래는 펼쳐 널어야 하는지에 대한 뜬금없는 질문, 그리고 답변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인문계통이 아닌 과학계통 출신이라는 티를 내게 된다. 잠시 아는 체를 하게 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를.

아무리 메마른 공기라도 그 속에는 언제나 수증기가 들어있다. 건조한 방에 가습기를 켜놓는 것도 공기 중에 수증기를 공급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공기는 수증기를 무한정 포함할 수가 없다. ​세상엔 뭐든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온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정 정도 이상의 수증기는 공기 중에 더 이상 있지 못하고 끝내 물방울로 변하고 만다. 온도가 내려가는 이른 아침에 이슬이 맺히거나 저 높은 곳에서 구름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원리이다.

옷 속의 물이 공기 중의 수증기로 날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널어놓은 빨래가 마르는 이유이다. ​햇볕이 쨍쨍 쬐는 날은 온도가 높아 공기가 수증기를 많이 가질 수 있어 빨래가 잘 마르고,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이 빨래 주위의 수증기를 날려 보내기 때문에 그 공기가 다시 수증기를 가질 수 있어 빨래가 잘 마른다. ​거기에 하나 더, 빨래가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빨래가 잘 마른다. ​바로 그것이 빨래를 펼쳐 널어야 하는 이유이다.

새삼 빨래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이치가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울상을 짓는, 주름진 얼굴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움츠린 얼굴, 찌푸린 얼굴엔 복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축축한 옷을 입고 있을 때 그 느낌을 잘 알 것이다. 복은 정직하고 공짜가 없다.

빨래를 탈탈 털고 펼쳐 널면 잘 마르고 뽀송뽀송해진다. 우리의 마음도 활짝 열고 햇볕도 쬐고 마음의 표면적을 넓혀보면 어떨까. 젖은 옷을 갈아입힌 아이가 쌔근쌔근 편안하게 잠이 들듯이 우리네 삶도 상큼하고 날아갈 듯 가벼워질 것이다.

삶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빨래를 펼쳐 널듯이 우리의 마음을 펼치자. 낙하산이 펴져야 살 수 있듯이 얼굴을 펴야 복이 굴러온다. 그러니 얼굴과 마음을 펼치는 것은 내가 복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투자이다. 복을 짓는 즐거운 행동이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긴다. 복을 지어야 복이 들어오듯이. 오늘 활짝 펼쳐진 얼굴에, 뽀송뽀송한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 출처 : 교차로 신문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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