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리더십⑫

[한국강사신문 윤상모 칼럼니스트] 칭기스칸은 모든 몽골 부족의 통일을 이룬 후 군대부터 개혁했다. 같은 씨족을 중심으로 편성돼오던 군대를 씨족의 구분 없이 10명, 100명, 1000명, 10000명 단위의 부대로 편성했다. 각 부대의 책임자는 출신과 경력을 따지지 않고 지휘 능력만을 기준으로 임명했다. 칭기스칸이 발굴한 장군 중에서 모칼리는 노예였고 젤메는 대장장이였다. 칭기스칸은 자신에게 칼을 겨누었던 적국의 전사라도 몽골에 충성하고 능력만 있다면 지휘관으로 발탁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칭기스칸의 사준사구(四駿四拘, 네 마리의 준마와 충견의 의미로 몽골 제국의 8명의 건국 공신)중의 한 명인 제베다.

칭기스칸은 타이치우드 족과의 전투중 목에 화살을 맞는 중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난다. 칭기스칸이 자신에게 활을 쏜 자가 누구냐고 호통 치자 두 손을 묶인 포로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나 여기 있소. 대칸의 말을 쏴 죽이고 장수 보오르초를 죽일 뻔한 것도 나요. 어제 전투에서 칸의 목을 쏜 것도 나요. 저를 죽이면 내 피는 한 줌의 흙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저 지르고가타이는 영명하신 칸을 위해 깊은 물이라도 건너고 단단한 바위라도 쳐부수겠습니다. 저의 생사는 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칭기스칸은 그 전사의 당당함에 매료되어 이렇게 말했다 .

“사람을 죽인 적들은 언제나 죄를 숨기고 털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하는 사람은 친구로 삼을 만하다. 화살촉을 몽골어로 ‘제베’라고 하니 이제 네 이름을 제베라고 부르리라.”

궁술의 달인이었던 제베는 이렇게 해서 칭기스칸의 휘하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 중의 한 명이 되었고 유럽과 아시아를 정복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제베는 도망간 호라즘의 국왕 무하마드를 잡아오라는 칭기스칸의 명을 받는다. 호라즘 제국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거대 이슬람 국가였다. 무하마드는 교역을 원하는 몽골의 사신들과 상인 50여 명을 학살했다. 이에 격분한 칭기스칸은 호라즘을 공격하여 정복했다. 제베는 칭기스칸의 명에 따라 부장인 수부타이와 함께 동유럽의 카스피해까지 무하마드를 끈질기게 쫓아갔다. 몽골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던 무하마드는 지쳐 병이 들었고 굶주림 끝에 사망했다. 제베는 무하마드의 목을 들고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으로 돌아오던 중에 숨을 거두었다. 제베는 목숨까지 바치며 칭기스칸의 명을 완수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에 위치한 칭기스칸의 기마상 <사진=Daum 블로그>

몽골 부족 간의 전쟁에서 패한 부족에 대한 처리는 거의 같은 패턴을 보였다. 전사를 비롯한 성인 남자는 대부분 처형했다. 아이들과 노인들은 노예가 되었고 부녀자들은 첩이 되었다. 따라서 부족 간의 전쟁은 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이었고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 칭기스칸은 몽골을 통일하는 과정과 국가 간의 전쟁에서 승리 이후의 처리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패배한 전사들에게는 전향의 기회를 주었다. 전사가 아닌 사람들은 직업을 조사했다. 그 중 기술자들은 절대로 죽이지 말고 데려오라고 명했다. 기술자의 기준은 의사, 교사, 목수, 요리사, 광대, 종교인 등 아주 다양했다. 칭기스칸은 이러한 기술자들을 우대했고 정복한 국가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빠르게 흡수했다.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과거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좌천되거나 옷을 벗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기업 간의 M&A에서도 합병 당한 기업의 임원들은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대기업은 진급 시즌이 되면 어느 부서의 팀장이 임원이 되느냐에 따라 차후 인사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작가 쓰마안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企業)이라는 단어에서 ‘기(企)’자를 유심히 보면 사람 인(人)자 아래에 그칠 지(止)가 있다. 사람인 자를 없애면 기업은 ‘지업(止業)’이 되고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기업은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없으면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회사건 국가건 결국엔 리더의 인사 정책에 따라 그 조직과 사회의 미래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칭기스칸은 20대의 나이에 부족장에 올랐을 때부터 사람의 중요성을 간파했고 평생 동안 유능한 인재를 곁에 두고자 노력했다.

※ 참고자료 : 「CEO 칭기즈칸처럼 경영하라」 쓰마안, 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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