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한상형 기자] “산티아고 순례길 일기를 정리하고 보니 나의 생각은 어디에도 없고 아무런 감동 없는 엉성한 현장 르포 같다. 처음 의도는 순례길 현장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므로 이 순례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이도저도 아닌 내용이 되었다.”

아! 드디어 10여 년 벼르던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온전히 걷고 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유럽 여러 곳을 배낭 메고 발 닿는 대로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꾸어 왔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니 말이 통하기를 하나 경비 또한 만만치 않고… 그래서 그저 꿈으로만 간직하고 흘려보냈다.

그런데 10여 년 전 우연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를 읽고는 ‘아하, 이거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꼭 한 번 해야지!’ 다짐했다. 그러나 시간이 그리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시간이 자유로워졌지만, 구체적으로 계획해 보니 그 또한 상당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지난 연말, 가까이 지내는 후배 한 사람이 산티아고 순례길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없다. 당장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4월 30일 인천을 떠나 5월 2일부터 6월 3일까지 꼬박 33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20~30km를 걸어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온전히 걷고 공인인증서를 받아왔다.

일흔여덟의 나로서는 감회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출발 전 과연 내가 그 먼 길을 무거운 배낭 메고, 불편한 잠자리에 먹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이도 있는데 무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많았다. 따라서 출발 때까지는 건강하게 끝까지 온전히 걷는 데만 관심을 두고 배낭 무게를 최소화하되 현지에서 부족한 것이 없도록 오직 장비 점검과 걷기 연습에만 온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서 며칠 걸어보니 이 정도면 끝까지 걷는 데 큰 무리가 없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출발 때의 그 긴장과 흥분이 차츰 가라앉으니, 매일 매 순간 지나가는 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장면을 그냥 흘려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순례길은 매일같이 새벽 껌껌한 침대를 더듬어 배낭을 꾸리고 아침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선 계속 6~7시간씩 전혀 낯선 길을 걸어야 하는 숨 가쁜 일정이다. 따라서 그때그때 보고 느낀 것은 많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냥 뭉뚱그려 ‘아! 참 좋았다’ 하는 정도지 구체적으로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나같이 나이가 든 사람은 따라 걷기만도 바쁜데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순례길 중 보고 느낀 것을 조금씩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하! 이럴 줄 알았으면 배낭 무게를 줄이고 걷는 데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순례길에 관한 전반적인 자료도 좀 더 찾아보고 왔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했다. 더욱이 나는 스페인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거의 소통이 되지 않는다.

자연히 이 기록은 일관성 있는 스토리도 없고 내용도 아주 단순한 현장 모습뿐이다. 또한 매일 매 순간 보고 느낀 것을 메모한 것이므로, 내용이 여러 번 반복도 있고, 아주 지엽적이고 사소한 것도 있고, 사실과 조금 차이가 나는 개인적인 느낌도 있다. 이 순례길, 가는 곳마다 전설과 사연이 있지만 잠시 바쁘게 지나는 나 같은 순례자는 모두 알 수도 없고 모두 찾아볼 수도 없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면 기존의 수많은 여행기, 안내서 등 정보자료가 있기에 나는 그저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을 기록한다. 젊은 사람들은 현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숙소며 관광지며 온갖 정보를 다 찾아보고 있었다. 정말 부럽고 좋은 세상이다.

저자 이병수는 194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교육행정학 석사)을 졸업했다. 교육부 산업교육행정 심의관, 국무총리실 교육문화 심의관, 경상북도·인천광역시 부교육감, THE-K 서울호텔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으며, 수상경력으로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저서로는 『삶 그리고 사랑』, 『산티아고 순례길 33일 : 나의 버킷리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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