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효석 칼럼니스트] 오늘 4월 1일은 만우절입니다. 만우절(萬愚節, April Fool's Day)이란 즐겁게 다른 사람을 놀리거나 거짓말로 남을 속이기도 하고 헛걸음을 시키며 노는 날이죠. 한국에서는 소소하게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거짓말이나 장난을 하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유래한 풍습으로 '에이프릴 풀스 데이(April Fools’ Day)'라고도 하며 이날 속아 넘어간 사람을 '4월 바보(April fool)' 또는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이라고 부릅니다.

만우절 이벤트로 하는 장난과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이 스피치도 잘한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김종관 감독의 영화 <최악의 하루>는 가식과 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작가에게 은희(한예리)가 직업을 물어봅니다. 그때 작가는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죠. 은희도 자신도 같은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직업은 '배우'였습니다.

소설가와 배우는 '거짓말'을 해서 돈을 버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허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영화는 '진실'과 '진짜' 그리고 '가짜'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긴 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아니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것을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예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다 솔직했는걸요."(극중 은희의 대사)

솔직한 것이 진실이고 진짜는 아니라는 것이죠.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거짓'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기 때문이죠.

초등학교 때 누구나가 배운 동화가 있습니다.

한스 브링커라는 소년이 네덜란드의 한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스는 하교 후에 집에 오다가 제방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스는 손가락으로 그 구멍을 막았습니다. 그 제방이 무너질 경우 마을이 온통 바다에 잠겨 버릴 것 같아서죠. 처음에는 손가락으로도 막을 수 있는 작은 구멍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커졌습니다. 한스는 손가락 대신 손으로 틀어막고, 나중에는 팔뚝으로 막아야 했습니다.

물이 차가워서 팔이 시렸고 힘이 점점 빠졌지만, 외진 곳이어서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밤이 으슥해진 무렵에서야 집에 오지 않는 한스를 걱정해 찾아 나선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한스를 구합니다.

기억나시죠? 그럼 이 동화의 작가와 제목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Mary Mapes Dodge 한스 브링커 이야기. 매리 도지 여사가 1865년 발표한 '한스 브링커 이야기 또는 은 스케이트 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원작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

한스 브링커와 그레텔 브링커 남매는 암스테르담 마을에 산다. 아버지 브링커는 밤에 제방 수리 공사를 폭풍을 만나서 머리를 심하게 다친다. 설상가상으로 전 재산인 현금을 들고나갔지만 사고 때문에 기억을 상실했기에 그 돈을 찾을 수도 없다. 그래서 브링커 가족은 어머니가 일을 해서 근근이 살았다. 한스는 스케이트 살 돈이 없었지만 나무를 깎아 만든 스케이트를 탔고, 둘 다 스케이팅 실력이 뛰어났다. 그러던 중 남매는 은 스케이트가 상품으로 걸린 스케이트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한다. 가난하지만 예의 바르고 고운 마음을 가진 남매에게 감동받은 주위 사람들이 도와줘서 둘은 쇠 날이 달린 새 스케이트화를 살 수 있었고 대회에 출전하고 아버지도 무료로 수술을 받게 된다. 그레텔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아버지 수술도 성공한다. 기억이 돌아온 아버지는 숨겨둔 돈도 찾고 덕분에 한스는 의대에 진학해 훌륭한 외과의사가 된다.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가 더 극적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이야기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이야기가 말이 안 되는가요? 두 번째 이야기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동화는 네덜란드의 19세기 전반기 문화를 잘 담아낸 작품이라는 평가합니다. 미국인 작가가 썼지만, 네덜란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에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한스 남매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들이 겨울이면 운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 마을마다 스케이트 대회가 열리고 주민들이 대회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을 볼 때 네덜란드가 스케이팅 강국이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 일 것입니다.

반면,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댐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고 팔로 막았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에 살다가 이민 온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수면 밑으로 3미터 정도 아래에 있는데, 손가락으로 둑에 난 구멍을 밤새 막아 마을을 구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제방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말도 안 되지만 더 감동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를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 살아남은 것은 댐의 구멍을 막은 이야기이고 주인공 아이가 한스 브링커가 되어버렸습니다.

네덜란드 스파르담에 가면 한스 브링커의 동상이 있습니다. dutch boy statue spaarndam

한스 브링커가 살 던 곳도 아니고 그가 스파르담의 댐을 막은 것도 아닌데 이 동상이 왜 세워졌을까요? 그건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고 그 믿음에 보답도 하고 돈도 벌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심지어는 사진과 같은 동상이 있는 공원이 조성된 곳도 있습니다.

당신이 믿고 있는 이야기가 모두 진실일까요? 이야기는 허구에서 출발해서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 이야기마저도 결국 내 기억이 만들어낸 허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피치를 잘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잘합니다. 그럼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이건 삼단논법의 오류이지만 틀리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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