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유여림 칼럼니스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중에서 어버이날에는 부모님께 못 다한 사랑이 생각난다.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내리사랑은 부모에서 자녀에게 내려갈 뿐 올라가기가 만무하다. 미물(微物)인 까마귀 새끼도 자란 뒤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순우리말 ‘안갚음’의 뜻이다. 하물며 영물(靈物)인 인간이 이를 귀감삼아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어버이가 없는 사람이 없으니, ‘엄마,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아래 시구(詩句)는 애절함으로 다가온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종일 밭에서 죽어라 일해도, 찬밥 한 덩이 대충 끼닐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 방망이질해도,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못난 부모 자식 걱정에 또 살아가, 입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그 어떤 것도 전부 포기하고, 이 세상 전부를 내게 주시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심순덕 시인의 시다. 이를 가페라 가수 이한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음반을 냈다.

‘아버지’라는 시 한 편이 있다. ‘천만년 살 것 같던 아버지 일찍도 가셨네. 그 흔한 환갑 술도 못 잡수시고, 며느리 밥맛 한번 못 보시고, 절간에 드나 시더니 극락세계 가셨던가. 얼마나 좋으시면 소식 한번 안 전할까. 자식 낳아 뭐 하리오. 이 아들 한다는 게 머릿밑에 나무 심고 술잔이나 기울이요.’

어버이와 자녀를 이어주는 단단한 끈이 고향이다. 고향은 우리 탯줄을 끊은 흔적이 있는 곳이다. 누구에게는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이다. 누구에게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모태보다 더 편하고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고향은 모태(母胎)다.

모태의 고향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첫째, 고향은 회귀본능이 있다. 연어는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소본능(homing instinct)의 습성이 있다. 연어뿐만이 아니라 제비, 비둘기, 말, 낙타도 그렇다. 사람도 회귀본능이 있을까? 집을 떠나 세상과 마주했던 사람에게서 “고향 가서 소나 키울까”라는 넋두리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40~50대 남자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귀농과 귀촌을 한다. 그들은 채소와 한우(韓牛)를 생업으로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 “고향 가 소나 키울까”라는 말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동물과 사람의 삶을 가능케 하는 귀소본능은 치유를 가능케 한다. 생명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본능이다.

둘째, 고향은 플랫폼이다.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처럼 고향은 흩어진 가족과 친구와 꿈을 연결하는 다리다. 삶의 깨달음이 클수록 부모님 품으로 머리 숙여 찾게 되는 게 고향이다. 깨달음이란 고향의 추억 그 이상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정(情)과 효(孝)를 다하고, 친구 간에 우정을 나누고,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꿈을 가져보는 플랫폼의 고향은 누군가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고향의 경계를 허무는 따뜻한 매개체인 플랫폼이 내가 될 수 있다. 물과 거름을 주는 공동체로서의 ‘나’도 플랫폼이다. 나는 건강한 가치관으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내 삶의 동력이자 인생의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고향은 예술적 영감을 준다. 황해도 연백 평야를 재료 삼아 그리운 고향을 단순화한 장부남 화가에게는 적어도 그렇다. 그는 북에 두고 온 산야(山野)와 성글게 박힌 집, 새, 나무, 자전거, 언덕배기 등 유년의 조각들이 그림의 재료다. 그의 그림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하늘과 평야의 색으로 10번 덮는 작업을 한다. 그는 삶의 어려웠던 이야기를 드러내기보다는 행복을 화폭에 메운다. 장부남 화가의 작품은 기교가 없고 예스럽고 소박한 맛으로 고향을 그리지만, 모던(modern)하다.

그는 특이할 가치관이나 철학은 없다. 그는 현재 시속 79킬로 미터로 달리는 행복열차 기관사로서 행복한 가정을 최우선으로 한다. 가족들에게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 내 남편 같은 사람은 없어요. 훌륭해요.”라는 가족의 행복열차 기관사로서 그는 남고 싶을 뿐이다. 그에게 윤형근(1928~2007) 선배 화가와의 만남은 특별하다. 선배는 생전에 장부남 화가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한 번도 안 했지만, “그림은 소설이 아니고 시다. 내 철학으로 피를 토하듯 한방에 확 그리는 거야.”라고 선배의 작품 세계관을 말해주었다. 선배는 작품 여러 점과 아동 미술교육에 관한 자료를 그에게 기증했고, 그는 선배의 뜻을 이어 청소년미술 교육에 혼신의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장부남 화가는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그 만의 놀이터에서 ‘장부남’하면 떠오르는 작품을 남기기 위해 고향을 그린다. “이 세상에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고 해탈한 웃음을 지으며 했던 말이 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생(生)이 끝나기 전에 한번 가고 싶다던 고향은 그에게 향수와 영감이 되어 작품의 모티브와 사상이 되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돌아보았다. ‘반포지효(反哺之孝)’를 귀감삼아 부모에게 ‘안갚음’을 평소에도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어버이와 우리를 이어주는 고향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다. 고향은 어머니같이 편하고 포근한 모태다. 모태인 고향은 회귀본능과 플랫폼 역할을 한다. 고향은 추억으로만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마주할 생명의 씨앗이 되고, 흩어진 것을 이어줄 것이다. 장부남 화가같은 예술가에게는 고향이란 창작의 영감을 주는 모태다.

결과적으로,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고향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의 엄마처럼 위대하다. 고향은 모태가 되어 귀소와 플랫폼과 영감으로 우리의 밝은 미래가 되어 줄 것이다.

 

유여림 칼럼니스트는 현재 유니시티코리아 바이오스라이프 프랜차이즈 오너로 활동 중이며, 사내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가치관과 철학 등을 칼럼으로 녹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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