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한상형 기자]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남성적인 문체의 속도에 대한 완벽한 배반, 시야가 좁아질 정도의 질주를 스키드 마크도 없이 일시에 끝내버린 급정거, 폭발하는 굉음들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 이 낯선 기분들과 이 기분들이 서서히 공포로 바뀌는 체험이 결정적이다.”

김영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은 첫 문장의 강렬함이 채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숨 가쁘게 내달리게 만드는 책이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작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김영하다. 데뷔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그는 독보적인 스타일로 여전히 가장 젊은 작가다. 그의 소설은 잔잔한 일상에 ‘파격’과 ‘도발’을 불어넣어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그가 일깨운 우리의 일상은, 매순간이 비극인 동시에 또한 희극이다. 슬픔과 고독,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의 인물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 곁을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김영하는 어느새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김영하는 우리에게 자살안내인을 소개했다. 판타지이고 허구인 줄만 알았던 그의 역할이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한 우리는 이제 다시 그 강렬했던 경험을 만나게 된다.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후 일 년 반 만에 신작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들고 김영하가 돌아왔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이번 소설에서 김영하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한편 저자 김영하는 한국문단 역사상 처음으로 귀고리를 달고 문학상 시상대에 오른 남자다. 신세대의 도시적 감수성을 냉정한 시선, 메마른 목소리로 그려낸다는 평을 듣는다. 문단에서 알아주는 속필로, 하룻밤에 단편 한 편을 써내기도 한다. 1986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으며, 87년 같은 과 동기였던 이한열의 죽음을 목도했다.

군 복무 중이던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제출했으나 낙선하고 같은 해 같은 작품으로 「리뷰」를 통해 등단했다. 제대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원 영어강사를 했으며, 지금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같은 해 8월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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