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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재테크의 시작, “펀드 반토막, 부동산가격은 계속 오르고”

[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국이랑 우리나라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미국에 금융위기가 터졌는데, 왜 해외 펀드 모두가 박살이 나야 하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어렵게 모은 돈이 아닌가? 써보지도 못한 돈이 반 토막이 나버렸다니, 너무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다.

펀드는 떨어질 때는 –50%가 되면 반 토막이지만, 올라갈 때는 수익률이 100%가 되어야 한다. 원금을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결국 남편과 상의 끝에 손절을 하기로 하고 모든 계좌를 정리했다. 내 살점이 떨어지듯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손해가 수천만 원에 달했다. 그런데 더 황당했던 건 1년 만에 코스피지수가 다시 2000대를 회복했다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렸으면 어느 정도의 손실을 보전할 수 있었는데, 어리석게도 바닥에 매도를 하고 만 것이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나?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런 시련을 겪는 걸까?’

1998년 IMF 때 아버지의 실직으로 힘든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로부터 딱 10년 후,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나름 잘 살고 있었다. 이제는 뭔가 내 인생이 달라질 거라 기대에 부풀었던 때였다. 무엇보다 내 아이만은 어렵지 않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꿈꿨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 스물넷의 나이에 은행을 다니는 1년 동안 교통비와 식대 20~30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돈은 모두 저축했다.

월급 중 80% 이상을 저축한 셈이다. 신혼임에도 남편과 극장 한 번, 커피숍 한 번 가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공짜로 주는 믹스커피를 마시고, 텔레비전에서 무료로 틀어주는 영화를 봤다. 이렇게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펀드 투자를 했는데, 반 토막이라는 처참한 결과만 맛보다니. ‘차라리 은행을 다니지 말았어야 해. 그냥 집에서 놀았어야 해. 어차피 이렇게 잃을 거라면 그냥 펑펑 다 써버릴 걸 그랬어.’

온갖 후회가 밀려들었고, 절망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때는 정말이지 접시물에 코 박고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펀드 투자 실패로 재산의 반을 잃었을 때는, 결혼한 지 2년이 되던 시기였다. 그건 우리가 살던 신혼집 전세가 만료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원에서 우연히 소식을 접하기 전, 그러니까 펀드가 반 토막 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얼마 전, 집주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2년 만기 됐으니, 계약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부모님 용돈을 드려야 해서 월세를 받을까 하는데, 월세 내기 어려우면 나가주시면 좋겠어요.”

부푼 꿈을 안고 손수 하나하나 예쁘게 꾸며놓은 신혼집을 집주인에게 빼앗기다시피 해야 하다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 이제 고작 4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하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에게 벌써 ‘떠돌이’ 삶을 겪게 해야 하는 건가 싶어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뿐이었다.

바로 부동산을 찾아가 아파트 매물을 몇 개 보러 다녔다. 그냥 집을 사버릴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2년 만에 전세가와 매매가 모두 몇천만원씩 오른 상태였다. 이보다 더 오르기 전에 좀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원래 전세로 살던 24평보다는 넓은 31평이 ‘내 집 마련’ 욕구를 자극했다. 이제 곧 아이가 클 텐데 좀더 넓은 집에서 자라게 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살던 대전 아파트는 31평이 평균 2억 정도였다. 전세 보증금과 맞벌이로 그간 모아놓은 돈을 모두 합쳐도 부족해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외벌이 월급으로 대출상환을 감당하려니 몹시 부담되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줄곧 제기되어온 ‘부동산 거품론’도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2년간 계속 오르긴 했지만, 혹시라도 대출까지 받아 무리해서 집을 샀는데 집값이 하락할까봐 겁이 났다. 결국 고민 끝에 돈을 좀더 모아서 대출 없이 집을 사기로 결심하고, 전세를 한 번 더 살기로 했다.

그런데 큰 손실을 떠안은 채 펀드를 매도하고 나니, 대전의 아파트는 여전히 쉬지 않고 전세가와 매매가 모두 오르고 있었다. ‘진작 펀드를 정리하고 대출받아 집을 샀어야 해’라는 후회로 땅을 쳤다.

게다가 나는 이미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남편의 월급 외에 수입을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산이 늘어도 앞으로 희망이 있을까 말까 한데, 그나마 있던 돈이 줄어들었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김유라 기자  ds3lk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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