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상황이 이리 되고 나니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와 좌절로 스스로를 탓하는 게 아니었다. 냉정하고 엄밀한 고민과 판단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열심히만 살면, 아끼고 모으면 조금씩 부자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 하나 키우는 데도 양육비에 쩔쩔매고,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전세난민의 생활, 남편과 내가 몇 년간 안 쓰고 모은 돈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반토막 난 처참한 현실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 이미 꼭대기라던 아파트 값은 왜 내릴지 모르고 하염없이 오르기만 하는지 야속했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회사가 구조조정을 했고, 유학을 나갔던 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귀국하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살던 대전은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

‘경제위기가 오면 부동산이 하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주식이 반토막 났는데, 부동산도 반토막 나야 하는 거 아냐?’ 뭔가 이상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벌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은행에 다녔다고 해도 전문적으로 금융을 공부한 것도 아니었고, 펀드나 세계 경제의 동향에 대해 깊이 파고든 적도 없었다. 그냥 주변에서 다들 하니 군중심리에 휩싸여 덩달아 펀드에 투자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는 중국 경제가 호황기라 했지만, 그전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져서 전 세계 경제가 위험에 빠졌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할 때 시부모님은 지금 집값은 꼭대기고 떨어질 일만 남았으니 집을 사면 안 된다고 했고 나도 잘 알지 못하니 전세를 선택했다. 당시 매매가 1억 2천만원, 전세는 8500만원이었다. 그런데 전세가격과 집값은 떨어지기는커녕 2년마다 수천만원씩 뛰었다.

결국 펀드도 부동산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선택했기에 이런 결과를 맞은 것이었다. 내 생애 겪은 두 번의 금융위기를 복기하지 않으면 10년 후 똑같이 당할 것 같았고,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경제서를 읽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알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저 답답한 마음에 각종 경제서부터 투자서, 재테크서를 찾아 읽었던 것뿐, 책을 통해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세우지는 못했다. 책으로 나를,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다짐했던 건 그보다 조금 더 뒤의 일이었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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