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스물넷,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아직 한창인데 왜 벌써 결혼하려 하냐고 의아해했지만,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상상해온 내 미래에는 항상 결혼이 있었다. 마치 내가 동화 속 공주라도 된 것처럼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행복이 시작된다고 믿었다.(어려서는 동화, 좀 커서는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그렇다고 환상에 빠져 엄청난 부자에 잘생긴 외모를 바란 건 아니었다. 나의 ‘백마 탄 왕자’는 안정적인 수입에 평범한 외모, 성실한 성품이면 충분했다. 가족들 돈 걱정 안 시킬 남자면 족했다.

아마도 가정환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IMF 때 다니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하셨다. 이전까진 나름 평온했던 집안 분위기가 한순간에 박살나고 말았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는 아버지는 그 존재 자체의 어색함과 무거움으로 분위기를 한없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가세도 급격히 기울었다. 이전까지 남부럽지 않을 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참고서 하나 살 때도 눈치를 살펴야 했다.

식탁에 오르는 반찬은 김치와 김이 전부였다.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한창 예민할 시기에 겪은 변화는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 어머니도 무척 힘드셨을 텐데, 그때는 어려서 부모님을 이해할 능력이 안 됐다. 그저 집에만 있는 아빠 때문에 친구들을 데리고 올 수 없는 것이 싫었고, 한창 클 나이에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것이 속상하기만 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내가 커갈수록 집안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고, 아버지 어머니의 간섭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 관심을 쏟을 대상이 자식밖에 없어서였는지, 부모님은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모든 일에 관여하셨다. 그게 숨이 막혔다. 나도 어엿한 성인인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와 부모님은 자주 부딪혔고 매일같이 집에서 살기 싫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혼자서 독립하기엔 돈도, 용기도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서 집에서 탈출할 날만 꿈꿨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결혼만이 나의 탈출구요 유일한 해방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불가능한 ‘안락한 집’, ‘행복한 가정’을 내가 직접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정말 간절히 ‘현모양처’, ‘전업주부’를 꿈꿨다. 진정한 ‘내 집’, 아니 ‘우리집’을 꾸리고 가꾸고 싶은 마음이었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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