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내 사정은 아랑곳없이 전세금은 날로 치솟았다. 원래 전세를 살던 곳의 보증금만으로 부족해, 어렵게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1억 1000만원에 새로 전세를 구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전세가가 1억 8000만원 정도로 올랐다. 고작 1년 사이에 7000만원이 뛴 것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또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데, 계속 그 집에서 살려면 남은 1년 안에 7000만원을 모아야 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일단 어떻게든 아끼며 돈을 모아보기로 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아껴봤지만 외벌이로 아이를 키우다보니, 남편 월급 250만원 중 120만원을 저축하기도 빠듯했다. 인생의 계획을 세우기엔 저축액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더뎠고, 다시 돈을 벌러 나가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렸다. 게다가 그때 나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던 때였다. 밤중 최소 3번에서 최대 10번은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만성피로에 시달려야만 했고, 그런데도 돈 벌어오는 남편을 위해 삼시세끼 밥을 해야 했다.

이유식, 청소, 빨래, 모두 내 몫이었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월급을 가져다주는 남편에게 그저 감사해야만 했고,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도록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내 잘못으로 재산을 잃었으니,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림과 육아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과 행복에 취해 힘든 것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기도 했고 말이다. 돈은 좀 없어도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잘 키워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것 역시 내가 바라던 가족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주부가 꿈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하는 게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직장인은 업무를 마치면 퇴근이라도 해서 쉴 수 있고 며칠간 일하지 않을 수 있는 휴가도 있다. 하지만 육아는 24시간 365일 퇴근도, 휴가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둘째가 태어났다. 아이를 만난 기쁨은 세상 그 무엇보다 컸지만, 그 기쁨의 대가인 듯 그만큼 어려움도 커졌다.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더더욱 집에만, 24시간 퇴근 없는 그곳에만 있었다. 아이가 한 명 늘어난 만큼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했다. 게다가 ‘미쳐 날뛰는 전세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둘째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아파트에서 오래된 빌라로 이사한 탓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무척 크던 시기였다.

비새고 온갖 악취가 진동할 뿐 아니라 각종 벌레가 출몰하는 열약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속상했고, 아이들에게 너무 죄스러웠다. 내가 부족해 아이에게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인가 싶어, 더욱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절약하고픈 마음에, 미용을 취미로 배운 여동생을 찾아가 머리를 잘라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취미 삼아 배운 기술인 터라 막상 다른 사람의 머리를 자르기가 쉽지 않았는지, 몇 시간에 걸쳐 내 머리를 다듬고 난 동생이 한마디를 건넸다.

“언니…… 앞으로 내가 돈 줄 테니 그냥 미용실 가서 잘라라.”

이후 다시는 동생에게 부탁하지 못했다. 한번은 파마가 풀린 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내 손으로 싹둑 자른 적도 있었다. 그럭저럭 봐줄 만해서 계속 그렇게 하고 다녔다. 월급 250만원 중 절반가량을 저축하려면 아이들을 위해 쓰기에만도 턱없이 부족했고, 나를 예쁘게 꾸미는 데 쓸 돈은 당연히 없었다. 결혼 전에는 나름 패션에 신경쓰던 나지만 그때는 주로 수유티를 입거나, 미혼인 동생이 안 입는 옷을 얻어다 입었다.

매일 집에만 있다가 친구들 결혼식을 핑계로 가끔이라도 집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차려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으로 멀리 이동하기가 어려워 참석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내 결혼식은 멀리서 기꺼이 와줬는데 강원도에서 결혼하는 바람에 직접 축하해주지 못한 친구에겐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다.

남편은 주말에도 교대로 일해야 하니, 육아는 일주일 내내 내 몫이었다. 밥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 외에 내 삶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어나지 않는 재산과 끝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집값은 나를 더욱 절망에 빠트렸다. 결국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 하는 좌절감이 밀려들었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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