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외출을 하려다가 거울을 보니 머리가 듬성듬성, 희끗희끗한 낯선 사내가 나를 빼꼼하게 바라본다. 살짝 미소를 지어보지만 왠지 낯설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젊은 청년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참 이상도 하지. 엊그제 상고머리 아이가 덥수룩한 장발의 청년으로 변했다가 이제는 초로의 아저씨가 되어 세상 속을 방황하고 있다. 세월은 흘러가는 물이오, 쏘아놓은 (화)살이라더니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의 의미가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온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그 사실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여기엔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인 것 같아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변화는 쉼 없이 일어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변한다는 것, 항상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덧없다고 한탄하지 말자. 덧없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이치의 실체다. 진실이자 만고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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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4대 미인이라는 수화(羞花) 미인 양귀비, 침어(侵魚) 미인 서시, 낙안(落雁) 미인 왕소군, 폐월(閉月) 미인 초선도 끝내 그 모습, 그 자리에서 떠났다. 우리가 그토록 찬미하던 아름다운 여인도 언젠가는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도, 감탄을 자아내는 가을단풍도 끝내 사라지고 만다.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지만 불어가는 바람을 손에 쥘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없이 목도하는 것처럼 무소불위 같았던 권력도 물거품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난다.

그러니 무상(無常)을 거부할 때, 무상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고통이 일어난다. 생로병사의 고통도 무상의 진리를 외면할 때 더욱 커진다. 돌아보면 그 동안 고정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지난 삶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낯익은 삶의 울타리에 갇혀 낯선 것들을 무시하면서 살아온 듯하다. 익숙한 것에 맛 들어 살다보니 거기에 새로운 것,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거의 없었다. 거기에서 삶의 재미와 새로운 맛이 생겨날리 만무했다.

반대로 무상의 이치를 그대로 내 삶으로 받아들이면 이해, 인정, 배려, 관대함 등 행복의 수많은 언어들이 오롯이 내 삶 속에 녹아든다. 무상의 진리를 진실로 깊이 숙고한다면 바로 지금의 나의 삶의 자리에서 그대로 행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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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 진리를 제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내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연연해하지 않게 된다. ​내 마음처럼 세상이 되지 않음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삶의 녹(綠)인 스트레스가 끼어들기 어렵다. 삶의 자유가 생겨나고 우리 인생은 극적으로 바뀐다. 기쁨과 사랑과 신비로 삶이 충만해진다. 지나온 과거, 다가올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기꺼이 즐길 수 있게 된다.

나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무상의 이치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치를 알면 힘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변화한다는 것은 삶의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래서 무상의 힘은 세다.

※ 출처 : 교차로 신문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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