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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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이승진 기자] "인간의 소명은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하는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오늘날 이 세계는 모든 사물이 고유하고 신비로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곳이 아니다. 계산과 예측을 할 수 있는 에너지들의 연관체계로 간주하고 있다. 자연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람도 최대한 에너지를 뽑아내도록 강요받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이 되었다. 회사 일에 매몰되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 “6분 아빠”가 된 한국 아버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우상 숭배>

“노동하는 동물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에 도취되어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자신을 해체해버리고 공허한 무로 파괴해버린다.” (마르틴 하이데거)

도구가 되어야 할 과학과 기술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우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절대 의존하고 있으며 이미 일종의 종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하이데거는 묻는다. 기술 문명의 주체인 줄 알았건만 탐욕의 노예가 되었다. 자신의 에너지를 뽑아 고급 물자들, 예를 들어 최신 스마트폰 및 고급 가전제품 등을 사들인다. 하이데거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위기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심각성이라 보며 “위기 상실의 위기”라고 부른다.

<이유 없이 존재하는 장미>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필 뿐이다. 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이제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이용가치를 매기는 시선을 던진다. 장미를 볼 때 그 존재 자체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스스로 존재하는 장미와 다르게 우린 매 순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을 하거나 불안해한다. 취업 시장에 본인을 잘 팔기 위해 스펙을 전신갑주로 장착하고 나선다. 그러면 기업들은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하여 데리고 간다. 그들은 사람의 존재가치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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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화할 수 없는 많은 것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 박사의 말 중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 있다.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경영할 수 없다.” 이 말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사회는 기술 문명 시대의 물결을 같이 타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치화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자연의 사물은 도구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 하이데거와 소로의 생각이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가 자연을 바라볼 때, 서로를 바라볼 때 존재로서 인정하는 마음의 눈이 갈급하다.

저자 박찬국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다. 저서로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들길의 사상사, 하이데거>, <초인수업>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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