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희가 말하는 행복한 결혼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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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조지희 칼럼니스트] 세상 제일 똑똑한 언니들이 연애만 하면 이 언니, 그 언니 맞아?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에 만난 박 양이 그렇다. 짱짱한 중견기업의 대리인 그녀는 그 팀의 독보적 에이스로 별명이 ‘나이프 박’이다. 칼 같은 일처리 능력은 물론 연말 기가 막힌 송년회 진행까지 잘 갈린 칼이 말하자면 박 양이다.

그런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 일만 하냐며 좋은 청춘 다 버릴 거냐며 대학 선배가 소개해준 김 군에게 대책 없이 반했다. 감사하게도 김 군은 박 양 타입의 비주얼을 갖췄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남긴 파스타를 ‘제가 먹을게요’ 이 한마디로 올킬하는 자태에 사지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 마냥 뜨거운 게 속에서 울컥울컥했다.

김 군이 좋았다. 김 군도 자신을 좋아한다 생각했다. 바빠 보이긴 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박 양도 바쁜 건 마찬가지니. 짬을 내어 만났고 짬이 없어도 만났다. 한 달 지나 결혼을 떠올렸다. “나는 스몰웨딩이 하고 싶어. 내 친구가 레스토랑 빌려했는데 너무 좋아 보이더라” 어느 날 박 양이 얘기했다. 묵묵히 밥 먹던 김 군은 대뜸 2~3년 정도 해외 파견 근무를 지원할까 하노라 했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 당황해서 말을 못이었다. 그때부터인가 김 군은 전화를 잘 안했고 박 양이 걸어도 바쁘다며 나중에 전화 한다 뚝 끊었다. 생각해보니 그때부터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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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연락은 박 양이 더 자주 했고 만나자 하면 한 번은 꼭 튕겼다. 그렇다고 김 군이 내내 무심했던 건 아니다. 벚꽃 피던 어느 날은 와인에 케이크 들고 불쑥 찾아와 로맨틱한 봄날을 주었고 새벽 두 시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 뜬금없이 사랑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사랑하지 않으면 가당키나 할까. 그런데 사랑하는데 자주 불안했고 자주 우울했으며 온통 신경은 김 군에게 가 있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박 양과 같은 스토리를 종종 접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이런 충고들을 한다.

- 바쁘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세요.

- 연애할수록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해요. 연애할 때 상대에게 너무 빠지면 상대가 금방 질려 해요.

- 그러니 밀당을 해야 한다니까요. 연애 초기에 밀당은 필수죠.

- 연애할수록 독립적이어야해요. 나 혼자 행복할 수 있어야 함께 있어도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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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기도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먼저 볼비의 애착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애착은 부모 각각에 대해 아동이 가지는 강하고 지속적인 유대로 특히 생후 1년 동안 유아와 양육자 사이의 초기 관계의 질이 애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성인 이후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시점에서 볼비의 애착 이론을 발전시킨 심리학자 에인스워드의 유명한 <낯선 상황 실험>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내용은 이렇다.

돌 무렵의 아기들이 엄마와 낯선 실험실에 들어간다. 아기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탐색할 때 엄마는 슬쩍 실험실을 나오고 실험실에는 낯선 연구원과 아기만 남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엄마가 다시 실험실에 들어간다. 이 반응에 따라 애착 유형을 3가지로 나누는데 모든 아기들은 엄마가 나가면 그냥 막 운다. 중요한 건 엄마가 다시 들어왔을 때의 반응으로 첫 번째, 불안형의 아기들은 엄마가 어르고 달래고 안아줘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회피형은 엄마가 들어가도 나가도 별 신경 안 쓰는 듯 눈도 안 마주치고 무관심해 보이나 속은 심박수 증가, 스트레스 호르몬 급증의 타들어가는 몸 상태를 보였다. 그리고 세 번째 안정형은 엄마가 들어오자 급격히 안정되었으며 엄마를 안전기지 삼아 낯선 장난감, 놀이에 다시 몰두했다. 안정형의 아기들은 평상시 엄마의 사랑을 담뿍 받았고 아기의 신호에 민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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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관계 역시 다르지 않다. 평상시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는 상대가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잠시 상대가 연락이 안 되어도 부재중이어도 어김없이 내가 있는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경우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일이나 다른 외부 활동에 주저함 없이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일상의 위로, 지지, 안전, 신뢰, 편안함을 못 받으면 약간의 자극에도 우리는 비틀거린다. 끄떡하면 연락 안 되고 노상 핸드폰 꺼져있고 집에 간다 해놓고 친구들 만나 밤새고 그 다음날 연락 안 되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으면 우리는 집착하고 불안해한다.

특히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크며 관계에 어려움을 자주 느끼는 불안형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상대에게 더 불안해하고 더 집착하고 더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너를 사랑한다는 지극히 안정적인 신호다. 안정적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경우 불안형은 특유의 따뜻함, 높은 친밀감으로 상대를 더욱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박 양으로 돌아가 보자. 그녀는 결국 김 군과 헤어졌고 성장통을 크게 앓았다. ‘연애할 때 제가 너무 집착을 해요.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어요. 좀 더 제가 독립적이었더라면, 좀 더 상대를 의지하지 않는 성향이었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까요.’ 자책하는 그녀에게 두 가지 얘기를 했다. 첫째, 친밀함에 대한 욕구, 애정을 갈구하는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고 솔직하고 효과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자. 그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욕구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 채워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될 일이다. 안 그런 척 밀당하고 쿨한 척 냉정하다 나중에 더 크게 아플 일 생긴다. 본연의 나를 예뻐해 주고 인정해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솔직할 때 우리는 더 당당하고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둘째, 의지할수록 독립적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자. 불안하게 하는 사람, 집착을 유도하는 사람이 아닌 관계에 신뢰를 주는 사람, 믿음을 주는 사람을 만나 맘껏 의지하고 맘껏 독립하자.

1인 가구 500만 시대, 나 혼자 사는 삶이 핫하고 힙해 보여도 사람 혼자 살 수 없다. 먼저 내 성향을 잘 알고 내 성향에 맞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기르고 그런 사람 하나 만나 내 맘 알고 네 맘 아는, 인생 공범 하나 만들어 맘껏 의지하고 평생 사랑하고 그 힘 받아 험한 세상 씩씩하게 살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내 생각은 그렇다.

※ 참고문헌 : 조나 레러의 <사랑을 지키는법>, 아미르 레빈&레이첼 헬러의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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