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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정지선에 차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신호가 바뀌었다. 맨 앞 차가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출발하지 않는다. 그 뒤차가 바로 경적을 울려댄다. 신호가 바뀌고 경적이 울리는데 채 1초가 걸리지 않는다. ​어떤 차도 거의 예외가 없다. 그런데 드디어 경적을 울리지 않는 차를 발견했다.

촬영진이 달려가 그 차의 운전자에게 어떻게 경적을 울리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했는지 물었다. 그 운전자 왈 ‘신호가 바뀌었나요?’

오래전 한 방송 프로그램의 실제 사례이다.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우리네 삶의 풍경이다.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바쁘다 바빠’가 삶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하철이 오는 소리가 나면 일단 뛰고 본다. 지금 들어오는 차를 타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앞 사람을 밀치면서 끝내 타고야 만다.

좁은 땅에서 생존경쟁이 치열한 삶을 살아오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짠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먼저 가져야 하고 내가 먼저 말해야 하고 내가 먼저 뭔가를 해야 하는 오랜 사회적 습관의 산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에게만 책임을 묻고 싶지 않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의 부작용으로 삶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개인적 삶의 질의 저하는 물론 공동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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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아니 1초의 여유도 가지기 어려우니 거기에서 수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의 영향이 개인적 삶에 있어서 인내의 부재로 이어져 수많은 사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3초로 인해 우리의 삶이 힘들고,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기에 기꺼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신에겐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현재 그 순간’에서만 정답이라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즉각적 행동이 두고두고 후회와 고통 속에 빠트릴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견디지 못하고 내뱉는 그 말이 연발총처럼 부정적 기운들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사소한 부부싸움, 일상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이 그러하고 얼마 전 종로여관 방화사건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잘 알고 있듯이 세상은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불안, 불만, 불신의 3불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감정의 촉수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있다. 인내심을 발휘하고 상대를 배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면 그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자, 하나, 둘, 셋을 헤아려보자. 그 3초를 삶을 끌어오자. ​즉각적 반응 대신 3초 동안 주관을 개입하지 않고 그대로 관찰하는 훈련을 해보자.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3초가 전화위복이 되어 내 삶에 행복을 선물할 변곡점이 될 수도 있음을 믿어보자.

이 때 ‘이럴 수도 있다’는 관대함과 ‘뭐, 어때’의 쿨함의 미학이 필요하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모든 것은 추억이 된다. 견딜 수 없었던 순간은 강물과 함께 흘러가버린 지 이미 오래여서 기억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3초의 위대한 힘, 그 순간을 사랑하자.

‘순간을 사랑하면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를 넘어 퍼져나갈 것이다’

실크 스크린 미술가로 알려진 코리타 켄트 수녀의 말이다.

※ 출처 : 교차로 신문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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