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류재언 칼럼니스트] 1년에 한번 주주총회가 열린다. 이는 상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회사의 법정 의무다. 시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3월에 주주총회를 연다. 법인세법에서는 사업연도 종료일로 3개월 이내에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은 기업의 재무제표를 제출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절대다수의 기업이 12월 결산을 택하고 있기에 법인세 신고를 위해서라도 결산일로부터 3개월 이내인 3월 31일 전에는 주주총회를 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주총회를 가보면 그 모습은 제각각 다르다. 회사의 조직문화와 경영진이 추구하는 가치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주주총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주주총회의 형태를 살펴보면 대략 아래와 같은 유형들이 있다.

1. 페이퍼 주주총회: 주주총회를 실제로 열지 않고 서류로만 남긴다.

2. 로봇형 주주총회: 대표이사가 읽을 의사록 초안과 스크립트를 준비하여, 대표이사는 해당 스크립트를 기계적으로 읽고 10분 안에 주주총회가 끝난다.

3. 발표형 주주총회: PPT 자료 등을 준비하여 한해 있었던 일들과 관련 정보 및 수치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이를 하나씩 발표해 나가는 형태의 주주총회

4. Q&A형 주주총회: 주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Q&A세션에 포커스를 맞추어 자유로운 질의응답이 가능하게 하고, 경영진이 이에 대답하며 현안과 미래에 대해서 논의하는 형태의 주주총회

5. 디너형 주주총회: 소수의 주주들이 오붓하게 식사를 하며 한 해를 뒤돌아보고 개선할 점들과 성장전략을 논의하는 형태의 주주총회

6. 라운딩형 주주총회: 주주들끼리 골프장에 모여서 골프를 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 서류에 서명날인만 하는 주주총회

7. 음주가무형 주주총회: 주주들끼리 연례행사처럼 모여서, 노래방, 가라오케 등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흥청망청 주주총회

8. 살얼음판 주주총회: 실적이 좋지 못하거나 회사의 분위기가 침체되어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쌓여서 날선 질문들과 경영진에 대한 질책이 주를 이루는 살벌한 주주총회

9. 고성막말형 주주총회: 경영권 분쟁 등의 사유로 소수주주와 대주주들이 서로 막말을 하고 고함을 치며 때에 따라서는 멱살을 잡거나 밀치는 등 유형력까지 행사하는 몹쓸 주주총회

10. 망각형 주주총회: 경영진이 1년 내도록 주주총회를 한 번도 열지 않고 주주총회를 열어야 할 법정의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

“주주총회 = 법정의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주주총회를 법정의무를 다하기 위한 감사보고를 하고, 법인세 처리를 위한 재무제표를 승인하고, 등기임원을 선임하며, 등기임원의 보수한도를 책정하는 정도의 요식행위라고 생각하는 경영진이 많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주주총회는 회사의 경영진이 주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개별적으로 주주들을 만나려면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들지만, 1년에 한번 정기 주주총회는 주주들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회사의 행사에 참여하게 만드는 훌륭한 명분이 된다.

이제는 주주총회가 법정의무 이행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틀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습니다. 법정의무를 위한 절차는 그것대로 충실히 진행한 다음, 힘든 발걸음을 한 회사의 주주들에게 어떻게 가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본사가 위치한 오마하에서 매년 5월 주주들을 위한 축제를 열고 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주주총회는 첫날 버크셔 해서웨이 포트폴리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전시 및 판매하는 쇼핑데이로 진행되고, 둘째 날에는 연례 미팅을 통해 워런버핏과 주주들이 중요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Q&A 세션을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 배치하여 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주주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실질적 의미의 토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 날은 자선행사의 일환으로 5KM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한국에서도 창업자의 고민이 묻어나는 주주총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인의 초대로 안상현대표가 운영하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의 주주총회에 참여했었는데, 그야말로 주주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었다. 주주총회는 안씨막걸리가 운영하는 이태원의 레스토랑에서 진행되었는데 입장하자마자 미쉐린가이드에 빛나는 안씨막걸리의 독창적인 음식들과 전국 곳곳에서 공수해온 전통주들이 제공되었고, 매년 주주총회에서 만나서 친해진 주주들끼리 흥겨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주주총회가 시작되자 먼저 주주들을 위한 연례보고 발표가 있었고, 중간중간 안대표가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수치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물어보는 주주들과 안대표 간의 열띤 토론의 장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저는 애정을 가지고 회사에 투자를 한 주주들과 그 책임을 짊어지고 사업을 이어나가는 창업자가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인데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의 가장 중요한 리추얼(Ritual)이다. 1년에 한번 있는 그 시간을 어떻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의미 있게 채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경영진의 의무다. 주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어떻게 우리가 가진 가치와 비전을 공유할 것인지,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에 대해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고민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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