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책>

[한국강사신문 김장욱 기자] 명나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개정하고 청나라 모종강본을 저본으로 삼아 20년에 걸쳐서 완역했다. 기존에 있던 것보다 더 증보된 10권, 총 120회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의 시문들과 모종강이 달았던 제목들이 고스란히 실려있으며 명대의 삽화들을 삽입해 우라나라에 출간된 여타의 것들보다 더 정제된 모습을 갖췄다. 기존의 것들이 역자의 주관이나 임의적인 설정으로 원작의 순수성을 살리지 못한채 평역이 되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정본의 형태와 내용을 어색함 없이 번역하면서 원작의 맛에 최대한 다가선 작품이다.

나광중은 중국 원말·명초의 소설가·극작가이다. 14세기 원말·명초 뛰어난 통속문학가로 이름은 본(本, 일설에는 관貫), 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이며, 관중은 자(字)이다. 출생지에 관해서는 샨시성(山西省) 타이위엔(太原) 출신이라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1364년에 살았다는 기록 외에 전기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최하급의 관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나관중은 소설가 한 사람이 아니라 소설가와 극작가 두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있다. 다만 그의 호인 '호해산인'이 당대 여러 지역을 방랑하며 지내는 문사를 뜻하는 점으로 미루어 떠돌이 문인집단의 일원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대표작은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민간의 삼국 설화와 원대(元代)의 삼국희(三國戱)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삼국에 관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엮어 펴낸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 있다. 그 밖에 나관중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소설로는 [수당양조지전(隋唐兩朝之傳)] [잔당오대지전(殘唐五代之傳)] [평요전(平妖傳)] [수호전(水滸傳)] 등이 있고, 희곡으로는 [풍운회(風雲會)] [연환간(連環諫)] [비호자(蜚號子)] 등이 있지만, 실제로 그가 지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일제 암흑기 때 작가 박태원 선생이 번역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당시 실의에 빠진 식민지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널리 애독되었다 한다. 명나라 초기의 대가였던 나관중 선생의 삼국지연의는 해방 이후에도 월탄, 김광주, 정비석 등 선배 작가들에 의해 한국어 판본 수를 늘리더니, 80, 90년대엔 낙양의 지가를 천정부지로 올린 바 있는 작가 이문열 평역본이 등장하였고, 그 뒤를 이어, 조성기, 황석영, 장정일 등 현역 작가들에 의해 ‘아무개 번역’이란 이름을 걸고 속속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들 현역 소설가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구성된 새로운 삼국지 판본들은 저마다 안고 있는 번역상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과연 원본 삼국지연의가 담고 있는 역사관과 세계관의 골자를 저마다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달리 말해 중국 민중들을 포함한 동양의 민중들이 긴 세월을 뛰어넘어 깊이 공감하고 열렬히 환호해 온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 해답은 삼국지의 본래 이름이랄 수 있는 삼국지연의에 있다. 결국 삼국지연의의 세계관과 중심적인 메시지는 ‘연의演義’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그렇듯 인의론仁義論은 동아시아의 유서 깊은 가치관이자 전통이다. 비록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등 주인공들이 역사 속에서 실패했고, 동아시아의 민중들은 그들의 실패를 동정하고 함께 슬퍼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실패 속에서 삶의 가치와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혹 옆 나라 일본에서 유행했듯 소설 삼국지에서 늙은 여우같은 꾀와 처세술을 배운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본질적인 메시지를 왜곡시키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구용 선생이 장장 20여 년에 걸쳐 까다롭기로 잘 알려진 원문을 한 줄도 빠짐없이 완역한 이 책 삼국지연의가 갖는 가치는 각별하다. 이는 무엇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정통성을 온전히 이어받은 책이 바로 김구용의 『삼국지연의』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원문의 서사적 스케일이나 문학적 특성을 담박하면서도 칼칼한, 화려한 치장 따위가 없으면서도 유장한 우리말 문장으로 온전히 되살려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 임우기 『삼국지연의』 책임편집자

『삼국지연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 그 자체만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원문을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만의 해석을 내려보고자 하는 진지한 독자들에게는 명백하게 역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삼국지연의』의 원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김구용의 『삼국지연의』가 다시 출간되는 점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김구용의 번역본에는 『삼국지연의』의 원문에 들어 있는 시문詩文이 빠짐없이 유장한 문체로 번역되어 있어서 『삼국지연의』의 본디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인물의 삽화나 부록으로 묶인 전투지의 지형도 등도 독자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다시 한 번 둘러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역사 기록을 토대로 해서 소설로 씌어졌지만 김구용 선생은 『삼국지연의』를 마치 역사 기록을 다루는 자세로 번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서경호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