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춘분이 지나 이제 봄기운이 제법 느껴진다. 몇 일전 전국에 서설(瑞雪)이 내리기도 했지만 누가 뭐라 해도 봄은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어쩔 수 없는 대세이다. 추운 겨울, 과연 봄이 올까 살짝 염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오고 마는 것을 보니 신기함과 경이로움이 한아름 밀려온다.

봄이 와서 그런 것일까. 나른함이 하품과 함께 온몸을 감싸고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얼마 전 이 촌놈이 머나먼 곳에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생긴 시차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지중해를 따라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그 중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각인된 것 하나, 밤새 지중해를 항해하고 아침이 되어 몰타항으로 귀항할 때 크루즈에서 만난 고풍스럽고 고즈넉한 항구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와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유구무언, 언어도단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문득 스친 생각 하나, 만일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과연 이 아름다운 풍광을 접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 저만치 떨어져 바라볼 수 있었기에 이 눈부신 장관을 만나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는 생각에 온몸에 흥분과 전율이 느껴졌다.

<사진=김재은 칼럼니스트>

이제 여행에서 돌아와 그 황홀한 순간을 삶 속에서 되뇐다.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기꺼이 펼쳐본다.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한걸음 떨어져 바라볼 때 그 자리의 실상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이치를 온몸으로 껴안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평생을 함께 하는 부부도, 그리고 수많은 인간관계속에서 이 이치는 그대로 유효하다.

바짝 다가서면 오히려 초점이 흐려진다. 아니 때론 초점 자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어 초점이 잘 맞아 선명한 상이 생긴 경우가 아닐까.

그러니 관계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며 생각해보면 어떨까. 또한 삶이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답답할 때 지금 그 삶에서 한 발짝 떨어지면 어떨까. 여행도 좋고 잠시 다른 공간으로 떠나 다른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공간적 거리는 거의 어김없이 시간의 여유를 가져와 마음의 넉넉함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우리가 겪은 일상의 희로애락도 그 속에 빠져 있으면 늪에서 허우적대듯 감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옥죄는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기꺼이 한걸음 물러나는 작은 용기를 내야 한다. 행동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지혜가 바로 이것이다.

바로 눈앞의 아이의 모습에 시시비비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날 때 아이의 진짜 모습이 보이고 사랑의 고갱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갓 피어난 봄꽃, 봄의 하얀 눈이 아름다운 것도 내가 한 걸음 떨어져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바심을 거두고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거리’를 두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자.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 본래의 진짜 모습이 가슴 벅차게 느껴질 것이니. 그 때 불어오는 봄바람이며, 시선을 사로잡는 봄 들꽃이 그대로 나의 것이 될 것이다.

※ 참고자료 : 교차로 신문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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