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가두는 타인의 시선, 그리고 조명효과(Spotlight Effect)

영화 '오만과 편견'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한국강사신문 이도겸 칼럼니스트] 심리학 용어 중 ‘조명효과(spotlight effect)’라는 말이 있다.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다. 조명을 받은 무대 위의 주인공이 관객들의 관심을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의 행동과 외모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다. 쉽게 말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화려한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는데 사람들이 내 발만 쳐다보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튀는 옷을 입으려고 했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미리 짐작해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적은 없는가? SNS에 솔직한 나의 의견을 적으려다 내 글을 볼 사람들을 의식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결국 이도저도 아닌 글을 남긴 적 있지 않은가? 모두 조명효과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내 행동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이다. 내가 의식하는 만큼 사람들은 정말 나에게 관심을 가질까?

미국 코넬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자 조명효과 이론을 제시한 사회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는 이와 관련된 실험을 진행했다. 한 학생에게 오래 전 스타였던 가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른 실험 참가자들이 있는 실험실에 잠깐 앉아 있다가 나왔을 때 티셔츠에 인쇄된 얼굴을 몇 명이나 기억하느냐였다. 티셔츠를 입은 학생은 46% 정도의 학생들이 자신의 나이와 걸맞지 않은 가수의 얼굴을 이상하게 여기고 금방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티셔츠를 알아챈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이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있지도 않은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나. 어제 회의에서 누가 어떤 옷을 입었고 오늘 출근길에 어떤 직장인이 왜 노란색 가방을 들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 쳐다보는 건 순간일 뿐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듯이 다른 사람들도 내게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기업 강의를 시작한 이후 점잖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튀는 색의 옷보다는 무난한 색의 옷을 선호하게 되었다. 어느 새 옷장은 어두운 색으로 가득 찼다. 하루는 주황색 셔츠를 선물 받고 그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너무 튀지 않나 싶었다. 결국 입고 나갔지만 하루 종일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정작 그 날 함께했던 사람들은 내가 무슨 색의 옷을 입었는지 관심도 없었고 다음 날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나 혼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번은 대본 연습을 하는 자리에서 동료 배우 K가 선배 배우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던진 말이 오히려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든 일이 있었다. 다음 날, K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일이 신경 쓰여 잠도 못 잤다는 것이었다. 선배 배우를 비롯해 다른 배우들이 자신을 버릇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는 별 일 아니니 잊어버리라고 다독였다.

생각해 보니 K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 나조차도 그 일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그 다음 연습 때 그 일에 대해 기억하거나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K는 혼자 위축되어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 K와 나는 있지도 않은 타인의 시선과 판단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지나치게 의식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든 말든 관심조차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의외의 곳에서 조명효과를 극복할 수 있는 팁을 얻었다. 조명효과라는 용어를 알기 전이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패셔너블한 모습에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했고 주변에서 본인에 대한 얘기를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친구였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이지 않니?”

친구는 대답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이 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결정하는 건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 갖지 않아.”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예의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 때부터 나도 조금씩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스포트라이트는 무대에서만 존재한다. 현실에서 스포트라이트 같은 건 없다. 카메라 밖의 팬들의 시선은 연예인들의 사생활마저 틀에 가두는 역효과를 낳는다. 연예인들이 팬들의 시선을 벗어나 소탈한 일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자신을 가두는 조명효과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봤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날 비추면 모든 관객들이 날 바라본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반면에 조명은 나의 행동을 억압한다. 날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 때문에 편안해지기 어렵다. 멋있게 보이려고 과장된 연기를 펼치게 된다. 내 안의 진실한 감정을 느끼기보다 관객을 의식한 연기를 하게 된다. 배우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운 연기를 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나를 감시하고 틀에 가두는 시선은 정작 남이 아닌 내 안에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과장된 행동을 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내가 설정한 조명효과다. 나의 개성과 주체성을 잃지 말자. 

내가 오늘 화려한 구두를 신고 싶으면 신는 것이다. 입고 싶은 옷이 있다면 입는 것이다. SNS에 내 의견을 적고 싶다면 솔직하게 적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는 것은 자신이 설정한 조명일 뿐이다. 이제 조명을 끄고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내가 만들어 낸 가짜 조명을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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