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순하고 착하고 똑똑하게 자라던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퇴행했다. 아이뿐 아니라 나 역시 퇴행했다. 둘째를 낳고서 한동안은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기만 했다. 그래서 둘째가 태어난 2011년이 육아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거 같다. 사실 너무너무 힘들어서 책을 가장 못 읽었던 해기도 하다.

2011년 9월부터 첫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그마나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렇다고 힘이 덜 든 건 아니다. 남편이 주야간 교대근무를 해서 육아는 모두 내 차지였는데 이때 『불량육아』를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전까지 천사처럼 말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많은 육아서들을 읽으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쌓여갔다. 육아서를 많이 읽고 강의도 들으러 다녔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나쁜 엄마같다’는 생각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도 가끔 나쁜 엄마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하은맘의 강의를 들으러 가서 구석에서 울다가 온다. 그렇게 엄마들에게는 힐링이 되고 눈물 나는 책이다.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지만 언제나 웃으면서 사랑을 줄 수만은 없어서 힘들고, 죄책감이 든다. 그 미안함으로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자신을 할퀴고 상처내면서까지 애쓰고 있는가?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나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여주었다.

육아가 좀 수월해지기 시작한 것은 셋째가 태어났을 때부터였다. 아들 둘을 키우며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기도 했고, 셋째를 키우는 동안 첫째와 둘째가 점점 독립적인 형들이 되어주기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조금씩 자란다. 젖도 떼고 기저귀도 떼고 밥도 혼자 먹고 신발도 혼자 신게 된다. 그렇게 이제는 정말 아이들이 다 컸나 잠시 마음을 놓았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어느 날부터인가 첫째가 화가 나면 칼을 찾았다. 진짜로 칼을 찾아 들었다는 건 아니고, 말로만 그랬다. 그럴수록 나는 아이에게 더욱 상냥하게 대하고 스킨십을 하며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려고 애썼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아들 셋을 키우며 화가 나고 짜증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굳이 아이한테 짜증내고 화내고 싶지 않아 꾹꾹 참고 있었다. 그게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화가 진정되고 나면 곧 내 안에서 화가 올라왔다. 실컷 욕이라도 뱉고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은 없는데, 아이는 내 마음을 귀신처럼 알아차렸다. 

“엄마 괜찮아?”
“응. 괜찮아.”
“엄마. 왜 눈은 안 괜찮은데 말로만 괜찮다고 해?”

고작 유치원생인 아이가 엄마의 눈빛을 보고 엄마의 감정을 모두 읽어냈다. 그것도 언어로 정확하게. 그리고 또 다시 뒤집어졌다. 왜 자기한테 거짓말을 하냐고 난리를 쳤다. 안 괜찮은데 왜 괜찮다고 하냐고 화를 내면서 말이다. 정말 힘들었다. 혼내서 화를 못 내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감싸 안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번은 결국 폭발해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둘이 부둥켜안고 엉엉 운 적도 있다. 어느 날, 푸름이 아버님 강연이 끝나고 마련된 뒤풀이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아이 꺼 아니고 엄마 꺼 같은데? 아이가 엄마 분노를 잘 끌어내네. 아이가 엄마 감정을 다 읽고 섬세하게 잘 키웠어.”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잘 키웠다니……? 난 너무 힘든데 잘 키웠다니? 이후로도 아이는 지속적으로 ‘엄마 마음상태가 괜찮지 않음’을 지적하며 화를 냈다. 아이의 심리를 종잡을 수 없고 내 마음도 모르겠기에, 화와 분노를 다루는 심리서를 밤마다 읽어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이의 화가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화라는 감정이 부정적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많은 심리서들은 ‘화’를 표출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감정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부정적인 말과 큰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어린 시절이 늘 상처였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늘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만 하고 살았다. 아이에게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았다. 화내는 엄마는 나쁜 엄마니까, 좋은 엄마가 아니니까. 남편에게 불만이 있어도 참기만 했다. 분출되지 못한 감정이 쌓이고 쌓여 속에서 썩어가는데도 말이다. 나는 24시간 365일 혼자서 감정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억눌려 있던 내 감정을 아이가 대신 건드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름이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아이가 화내면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 웃어 넘겼다. 아이의 화를 무시했다는 게 아니다. 

‘그래. 네가 화가 났구나. 화가 났으면 그걸 알려야지. 그래야 마음속에 담아두어서 스스로를 상처내는 일이 없으니까.’ 이런 생각으로 아이의 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했다는 뜻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화를 내는 일이 점점 줄어들더니, 거의 사라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건강하게’ 화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이 아이에게 혼란을 주지 않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더이상 화를 꾹꾹 참으며 가짜로 좋은 엄마가 되려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제 제법 화를 잘 낸다. 아이들도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하지 않고 건강하게 화를 표현한다. 나는 몇 년 전보다 지금 화를 훨씬 더 많이 표현하게 되었지만, 아이들과의 사이는 인생 최고로 좋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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