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2017년, 우리 가족은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사를 했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몹시 설렜다. 사실 예전에 살던 집은 전 주인이 이미 인테리어를 해놔서 내가 거의 손대지 않고 들어가서 살았다. 세입자 집만 수리하던 내가 드디어 내 집을 꾸미게 된 것이다. 결혼 11년 만에 이룬 쾌거다. 무엇보다 책으로 꾸며진 집, 아니 책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뛸 듯이 기뻤다.
 
수많은 집을 보러다니고 수리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도배를 해주시고 타일을 붙여주시는 사장님 옆에서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세입자용 싱크대를 제작해주셨던 팀장님께 우리집 가구 제작을 맡겼다. 수년간 조명을 구입했던 도매업체에서 기술자분을 연결해주셔서 콘센트 위치도 바꾸고 천장을 타공하여 간접조명을 아주 저렴하게 달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수리비를 아낄 수 있는지는 거의 반 전문가가 되었기에 집을 꾸밀 때도 돈에 대한 걱정 없이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거실에는 소파나 TV 대신 책장으로 가득 채웠다. 책에 먼지가 많이 끼면 공기가 좋지 않을 것 같아 슬라이드장을 짰다. 가구업체를 불러 직접 디자인했다. 맨 왼쪽은 쓰레기통인데 보이지 않고 냄새나지 않게 붙박이장 속에 넣어두었다. 슬라이드장을 열면 오른쪽처럼 책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없을 때나 손님이 오실 때는 문을 닫아두니 집이 깔끔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보통 아일랜드 식탁은 아래 공간이 살짝 비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 공간이 아까워서 비슷한 컬러로 책장을 짜서 넣었다. 책장의 가장 윗줄은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볼 수 있어서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같은 책을 꽂아놓았다. 주방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아이들에 물려주고 싶은 책’이다. 지금 당장 읽을 수 없어도 제목이라도 꾸준히 노출하면 언젠가는 읽게 될 거라 기대한다. 나는 아이들에게는 집이나 차를 사줄 생각이 없고 ‘책’을 물려줄 생각이다.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절약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공간의 빈틈이 생기면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예쁘고 예술적이고 럭셔리한 것은 내게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냉장고나 밥솥, 세탁기 등등 가전제품은 13년째 같은 것을 쓰고 있다. 새 집에 온다는 이유로 버리고 새 것을 산 것은 한 가지도 없다. 밥솥은 흠집이 심한 내솥만 3번째로 바꾸어 쓰고 있다. 아는 언니가 놀러와서 지독하다며 언젯적 밥솥을 지금 쓰냐고 하는데 나는 남들은 어떤 밥솥을 쓰고 무엇이 신제품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

집을 꾸밀 때도 공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붙박이장 속에 많은 물건들을 넣어놓아서 청소할 시간을 벌었다. 아파트가 평당 얼마인가? 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좋다. 그래서 우리집은 집 전체에 침대도 없다. 최저임금이 1만원을 향해 가고 있다. 시간이 곧 돈이다. 티 안 나는 청소를 매일 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수납장을 많이 짰다.

우리집은 작은방에 TV가 있는데, 국제 스포츠경기나 EBS 만화나 개그콘서트를 볼 때 온 가족이 그 방에 모인다. 그 방에도 역시 책장이 있다. 예전에 쓰던 책장을 이사할 때 가져와서 내가 읽은 책들을 모아놓는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책을 제외하고는 지인들이 놀러오거나 하면 간혹 선물하기도 한다. 1년 전에 이사하면서 책 꽂을 공간을 충분히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빈 자리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림만 잔뜩 있는 아이들의 동화책 대신 내 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내가 읽은 책을 함께 읽을 미래를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쁘다.

내 집을 내 마음대로 꾸몄더니 편리하고 또 마음이 편해서 좋다. 내가 이 집을 사서 이렇게 꾸미려고 그렇게 고생했나 싶어서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여러 번의 이사를 갈 때마다 조금씩 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아이들이 경험하니, 전학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이사가고 싶어 한다. 변화하는 것, 새로운 것의 기쁨을 몸으로 깨달은 아이들에게 나는 늘 ‘전 세계 어디에서 살 건지 결정해’라고 말한다. 꿈꾸고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고, 그게 어디라도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서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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