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큐 그리고 큐남북정상회담의 문화메신저 역할을 한 가왕 조용필의 노래 한 구절

[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 홀로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렸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에 문화메신저 역할을 한 가왕 조용필의 노래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제목을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Q’이다. 어떤 이유로 제목이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실연을 딛고 새로운 사랑과 삶을 다짐하는 노래인 듯 하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평화정착이 다가오는 이 좋은 시절에 웬 ‘큐타령’이냐고 물어온다면 할 이야기가 참 많다. 무엇보다 ‘Q(큐)’라고 외치는 그 소리가 내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진한 땀을 흘리며 준비한 후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울리는 ‘총성’이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새로운 무대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다람쥐 쳇바퀴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는 새로운 기분, 긴 장마로 눅눅해진 곳에 비친 햇볕 한 줌의 느낌이 바로 ‘Q’속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는 생각, 바로 그것이 나의 Q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제나 나의 하루는 Q로 시작한다.

‘큐’는 생각만 하고 잔머리 굴리며 이해관계를 따지는 삶에 종지부를 찍고 ‘행동’의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기는 응원군이며, 삶에 발랄하고 즐거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치어리더이다. ‘Do it now’이며 ‘Just do it’이다.

내 마음처럼 잘 안되고, 희로애락이 뒤범벅인 세상살이에 Q의 인생 또한 걸림이 어찌 없으랴.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드는 ‘컷(Cut)’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컷’은 ‘큐’와 한 통속이다.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이다. 두려움을 주는 삶의 장애물이 아니라 나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게 바로 ‘컷’이고 ‘큐’의 인생여정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컷’이다. 그래서 ‘큐’는 ‘컷’을 위해, ‘컷’은 ‘큐’를 위해 존재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명콤비가 아닐까.

삶에 지치고 삶이 지루해질 때 ‘나만의 Q’를 스스로에게 외쳐보자.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망설임이 나를 감쌀 때 ‘돌격신호’가 바로 ‘Q’이기 때문이다. 나를 새로운 삶의 무대에 주연배우로 등장시키는 마법을 지닌 존재인 ‘Q’를 어찌 사랑하지 않고 어찌 동무삼지 않으랴.

여기에 또 하나의 ‘큐’를 소개한다. ‘호기심의 큐(Question)’이다. 인생의 젊음은 물리적인 나이가 아니라 바로 ‘호기심’의 누림에 있다고 한다. 타성에 젖은 삶, 나만의 고집과 경험에 집착하며 나의 우물에 갇힌 곳에 호기심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삶의 재미와 가치 또한 떠나버린다.

호기심의 삶에 스스로 ‘컷’을 마구마구 외치지 말고, 저 깊은 곳에 감춰진 ‘큐’를 꺼내 세상 속에 맘껏 펼쳐보면 좋겠다. ‘컷’의 양면성이 헷갈리기도 하지만. 큐를 외쳐라. 그리고 큐의 촉수를 켜라. 인생은 짧고 이 순간에도 아까운 삶은 흘러간다. ‘Q’로 하루를 시작하고 ‘Q’로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나가자.

※ 참고자료 :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김재은 칼럼니스트  happyhub2@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