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한윤희>

[한국강사신문 한윤희 칼럼니스트] 첫째 정인이가 태어나면서 나의 모든 관심은 아이에게 쏠렸다. 첫째에 대한 로망이 커서일까? 첫째는 무조건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나의 최우선 순위는 바로 건강이었다. 먹는 것부터 바르고 입는 것까지 모두 제일 깨끗하다고 생각한 유기농을 고집했다. 집에서 현미를 발아시키고 빻아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아이의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100일 후부터는 몇 달을 대기해야 신청 가능한 백화점 문화센터 수업을 주 5일 꼬박꼬박 출석하며 열심히 다녔다. 문화센터에 가면 나처럼 교육열이 뛰어난 엄마들, 흔히 말하는 유모차 부대들이 벌써 센터 문 앞에 즐비해 있곤 했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아이와 문화센터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쉽게도 이 시기에 문화센터를 다니는 것이 아이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돌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정인이는 잘 걸으려 하지 않았다. ‘아직 못 걷는 아이들도 많은데 뭐. 때가 되면 다 걷겠지.’ 아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를 기다리며 걷는 연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도 늦었다.

하루는 이모가 “정인이보다 생일이 느린 아이도 말을 제법 하던데, 정인이가 말이 너무 느린 건 아니니?” 하고 걱정되어 물으셨다. “아니에요. 이제 곧 말을 다 할 거예요. 정인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요 뭐.”라며 아무 걱정 없이 말했다.

정인이 또래 아이 중에 말이 빠른 아이들도 많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더 크고 학교에 가게 되면 어차피 한글도 다 배우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오로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었다.

조리원 동기 언니들과 모임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의 천국’이라는 키즈카페에 자주 놀러 갔다. 놀이기구가 많고 드넓은 키즈카페에 아이들을 놀게하고, 나는 조리원 동기 언니들과 함께 즐거운 티타임을 가지곤 했다.

정말 시끄럽고 정신없는 그 공간에서 정인이는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지만, 집에 와서는 징징거리기도 하고 멍하게 앉아 있곤 했다. 그때쯤이었을까, 아이의 폭력성이 조금씩 나타나고 산만함이 내 눈에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인이의 그런 행동이 왜 그런지 그 당시에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 육아팁: 24개월까지는 매일같이 엄마가 아이와 함께 안정적이고 익숙한 공간(집)에서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면서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이다. 문화센터는 아이의 시선을 끄는 퍼포먼스식의 수업이 많고 주위 환경 또한 시끄럽고 산만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기 어렵다. 이 시기에는 문화센터에 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 참고자료: (주)임서영 영재교육연구소 교육매니저의 『11명 영재맘의 육아 스토리: 행복한 영재를 키운(한국강사신문, 2020.05.29.)』

한윤희(앨리) 칼럼니스트는 영재오 교육매니저 6년 차다. 영재오(영재들의 오후학교) 더나방, 영재반, 주말캠프, 밸런스워킹 선생님으로도 활동하며 아이들과의 현장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탐큐수교구 지도자양성과정을 총괄 담당하고 있다.

슬하에 9살, 7개월의 두 자녀를 키우며 영재오의 프로그램을 통해 첫째 아이를 사회성이 좋고 행복한 영재 아이로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블로그 <정인주아맘의 영재놀이 홈스쿨링>에서 영재오 아이들의 성장일기를 소개하고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