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수인 기자]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인간 삶의 은유로 쓰일 수 있겠지만, ‘운전’만큼 딱 떨어지는 메타포도 드물 것이다. 운전은 기계나 자동차를 부려서 움직이게 하는 능동적 행위를 뜻한다.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르거나, 내가 남들보다 느리고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누구나 스포츠카를 탄 레이서처럼 질주해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낄 것이다. 꽉 막힌 교통체증 없이 뻥 뚫린 꽃길을 꿈꾸지 않는 이 없을 것이며, 갑자기 뺑소니 사고 같은 일을 당해 황망했던 경험도 다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내 삶을 장악하고 있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 통제 불가능의 상태에 불안과 좌절을 느낀다.

저서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은행나무, 2020)>는 저자가 인생 점검의 필요를 마주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사랑,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길, 뿌연 앞날. 누구나 맞닥뜨리기 마련인 슬럼프를 경험한 저자는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운전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단지 물리적인 이동일지언정, 과감하게 혼자서 자유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이 절실했던 것. 마음먹기도 쉽지 않았는데, 면허를 따내는 것부터 순탄하지 않다. 저자는 실패와 연습을 반복하며 자신이 옮기거나 읽은 소설 속 인물들의 시행착오를 떠올린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연결되는 도시 서울처럼, 한두 사람만 건너면 이어지는 삶에서 관계의 충분한 안전거리 유지는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알듯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은 서로에게 위험하다. 자유롭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유동적이고 포괄적인 자아로서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들을 선별하여 들려주는 저자의 글이 끝에 다다랐을 때쯤엔 깨닫게 된다. 적당한 거리를 판단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지혜가 필요함을. 자유는 그 대가 중 하나임을.

운전대를 잡고 진땀을 흘리던 날들, 그리고 초보 딱지를 떼고 이제는 제법 여유를 찾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문학 작품들 속 빛나는 지성, 내가 애착을 품고 그토록 사랑했던 것들.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는 운전에서 비롯된 좌절과 기쁨이 없었다면 절대 이렇게 꿰어지지 않았을 자아성찰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행동함으로써 성숙해 나가는 한 한 여성의 다채로운 상념을 모은 이 책에서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질문과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박현주는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작가, 번역가,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2018년 <하우스프라우>로 제1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겨레에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를 연재 중이다.

옮긴 책으로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과 <죽음본능>,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경계에 선 아이들>, 마이클 온다치의 <잉글리시 페이션트>, 존 르카레의 <영원한 친구>,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와 <차가운 벽>, 켄 브루언의 <런던 대로>, 찰스 부코스키의 <여자들>, 조 힐의 <뿔>,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도로시 L. 세이어즈의 <시체는 누구?>, <증인이 너무 많다>, <맹독>, <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런던 대로>, 조이스 캐럴 오츠 <악몽>, P.D. 제임스 <죽음이 펨벌리로 오다>, <조용한 아내>, 하워드 엥겔의 <메모리 북>,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여섯 권 등을 번역했으며 에세이집 <로맨스 약국>, 소설 <나의 오컬트한 일상>, <서칭 포 허니맨>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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