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수인 기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일어나는 최대의 사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일생일대의 사건에 대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준비를 덜 한다.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법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병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저자 김현아 교수(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는 관절염의 기초·임상연구에 다양한 업적을 남긴, 한국 류머티즘 연구를 대표하는 의학자다. 30년간 의료현장 일선에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온 저자는 저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창비, 2020)>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일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좋은 삶이라는 목표를 위해 똑같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몸이 쇠할 대로 쇠해져서 스스로 팔다리도 못 움직이고 밥도 누가 도와줘야 먹는 지경이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중년 이후 이 무서운 상상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오래 생각하지 않고 마치 재수 없는 상상이라도 한 듯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일쑤다. 어떤 죽음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무수히 다양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평온하게 눈감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지만, 그런 행운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

100년 전만 해도 마흔살 남짓했던 인류의 평균 수명은 최근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인체의 기능은 거의 그대로인데, 사용 기간만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인간의 수명 연장과 삶의 질 향상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말기 질환에 시달리던 환자가 결국 병원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 경우 의료인은 남은 가족과 슬픔을 나누고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인도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 시스템 속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삶의 질과 죽음의 질을 최우선으로 하기보다는 보호자에게 질책을 피하기 위한 선택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더 나아가 병원의 정기적인 사망집담회에서 비난받을 일은 없는지 살피고, 심지어는 병원 평가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지까지 따져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점점 더 의사들이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사망의 전 과정을 온갖 진단명으로 세분화하고, 그때그때 응급상황에 대응하는 데 급급해지는 것이다. 밥을 잘 먹지 못하면 억지로 영양을 공급하고, 숨을 잘 쉬지 못하면 기도삽관을 한다. 인간 사망의 자연스러운 단계가 모두 처치 가능한 질환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의료화’는 환자와 가족에게는 고통의 연장과 경제적 손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한된 의료자원의 낭비를 안긴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가족의 입장에서도 언제부터 마음을 정리하고 죽음에 관해 대화해야 할지, 행정적으로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외에도 인체의 노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능 저하와 대처법, 노인장기요양보험 이용법과 임종장소 선택에 고려할 점 등 죽음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망라되어 있다.

저자 김현아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병원 내과에서 전문의/전임의를 수료했다. 현재 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있으며, 관절염의 기초·임상연구에 다양한 업적을 남긴 한국 류머티즘 연구를 대표하는 의학자다.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일본류마티스학회 젊은의학자상 등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 대한내과학회 정책단 및 대한류마티스학회 보험이사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의료 정책의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를 맡아왔다.

30년을 의사로 살면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 수없이 지켜봤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늙음과 죽음을 치료해야 할 질병처럼 인식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죽음을 덜 준비하게 되었다. 건강을 유지하고 목숨을 이어가는 것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좋은 삶이라는 목표를 위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병원 안팎에서 이어나가고 싶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