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수인 기자] 오늘 한국 사회에는 여러 ‘살아 남은 자’들의 담론이 넘쳐 난다. 살아 남은 자의 고통, 살아 남은 자의 슬픔, 살아 남은 자의 눈물. 대구지하철, 세월호, 가까이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망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 사회의 모든 ‘살아 남은 자’들의 참회와 반성이 절실한 사회적 재난들이다.

반면 공동체의 생명과 안위를 위해 순국하거나 순직한 사람들의 죽음과 상처도 있다. 당연히 국가가 알아서 보상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듯하다. 그러나 국가가 재대로 가억하지도 보상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방관과 무관심을 넘어 오해와 편견과 폄훼로 제2의 상처를 당하고 있다면? 그럴 때 이들의 살아 남은 고통과 슬픔과 눈물은 더 심각하다.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의 기억과 기록 ‘살아 남은 자의 눈물’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한다.

잘 알려진 대로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은 독일 출신의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다. 나치의 체포명령을 피해 망명했으나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을 비롯 그의 시 ‘사상자 명부’에서 애도하며 부르는 동료들을 향한 죄책감을 담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았으나 끝내 자살하고 만 이탈리아의 과학자이자 시인 프리모 레비 시집 ‘살아 남은 자의 아픔’도 있다. 20세기를 인간 상실의 비극으로 몰고간 나치의 만행에 대한 성찰들이다.

‘천안함 생존자 전준영’의 저서 <살아 남은 자의 슬픔 (오름(오름에디션),2020)>은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어 부모와 세 여동생을 잃고 혼자 살아 남아 진실을 기록하고 인권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앙리 위젤의 ‘나의 기억을 보라’를 떠올리게 한다. 앙리 위젤은 아우슈비츠 이후 10년 동안 침묵 속에 극심한 트라우마로 고통 받다가 ‘기억’과 ‘기록’의 길을 선택한다.

저자 전준영은 스물 두 살까지만 해도 축구선수이자 대학생이던 평범한 청년 전준영. 2010년 천안함 피격에서 살아 남은 그의 이름에는 ‘천암함 생존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군 입대 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야 했다.

1987년 전남 순천 출생으로 다섯 살 때 서울로 이사와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축구부로 활동했고 원광대학교에 진학, 미대에 다니며 축구심판으로서의 사회생활을 준비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2008년 4월 해군에 입대, 천안함 승조원으로 복무하다가 전역 한 달 전 천안함 피격을 당했으나 살아 남았고, 46용사 영결식 참석 이틀 뒤 전역했다. 이후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었으나 천안함이 인연이 되어 만나 결혼한 아내와 가족의 사랑으로 이겨내며 지금은 세 아이를 기르는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천안함 피격 당시 가장 고참병이었던 그는 천안함예비역생존자전우회장을 맡아 지난 10년 동안 활동해오고 있다. 2010년 이후 천안함에 쏟아지는 ‘의혹’, ‘패잔병’ 등 갖은 비난 섞인 냉대와 악플에 맞서왔으며, 천안함 46용사를 기리고 생존 장병들을 돕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청년미래연합’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청년장병들의 권익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불합리한 국가유공자 지정제도와 보훈정책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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