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리더십의 출발은 운 경영이다.

[한국강사신문 염소연 칼럼니스트] 전 파나소닉의 전회장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사비를 들여 마스시타 정경숙이라는 정치학교를 세워 각계각층의 인재들을 배출했다. 그곳에 선발된 학생들은 4년간 기숙하며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생활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선발기준이다. 그들이 중요하게 보는 두 가지는 학력이나 스펙이 아닌 ‘운이 좋은 사람’ 과 ‘유머가 있는 사람’ 이다. 보통 운이 좋다고 말하면 마치 타고난 운명이 좋다라고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운세를 떠올린다.

그들은 왜 선발기준에 운과 유머를 두는 것일까. 타고난 운이 좋은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운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마음먹기 따라 얼마든지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운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머피의 법칙이라는 것을 보통은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좋은 일을 생각하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하면 좋은 일들이 생기고 부정적인 생각을 일삼으면 연이어 부정적인 일들이 내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람은 좋지 않은 것에 더 빨리 쉽게 이끌리고 물든다고 하는데 머피의 법칙의 좋은 것은 감춰지고 부정적인 면만이 잘 알려진 것도 아이러니하다.

‘승익승 패익패’라는 말이 있다. 이기는 사람은 이기는 흐름을 타며 계속 이기고 지는 사람은 패배의 늪에 빠져 계속 자신을 지는 것으로 몰아간다. 결국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내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운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 잘될꺼야,’ ‘지금부터 잘하면 되지.’라는 마음이 그와 같은 운을 만들어 낸다. 인생에 운을 스스로 창조하는 사람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머는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현상이라는 늪에 빠져 전체를 관망할 수 없는 사람은 매사가 힘이 들고 이겨내야 하는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유머란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을 때, 허우적대는 내가 아닌 상황자체를 관망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상황자체를 관망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나 자신 또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낙관이 아니라 상황을 메타인지(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인지하는 것) 하고 그 시점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기초정신이다. 어찌 보면 긍정이란 단어는 인정이란 말로도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시험에 떨어진다면 무조건적인 낙관주의자들은 지금 현 상태를 메타인지 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미래의 좋은 운을 창조하기 위해 지금 현 위치에서 공부방식이 잘 못된 것은 아닌지 시간관리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스스로를 메타인지 한다.

셀프리더가 운을 관리하는 방법은 메타인지와 더불어 끊임없는 긍정성 주입이라 할 수 있겠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 머리와 마음을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내면은 한 번의 시도나 노력으로 좋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동기부여가 브라이언트레이시가 연설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자꾸 공기를 주입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구멍 뚫린 타이어와 같은 것이다. 온갖 좋은 상상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양질의 독서를 해도 어느 순간 타이어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우리의 자긍심은 새어 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긍정이라는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그날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루를 맞이한다. 잔잔한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몇 줄의 책을 읽거나 감사일기를 쓰기도 한다. 그렇게 좋은 기운과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안도감과 새 출발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령 아침에 진실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듣고 이것을 체득했다면 저녁에 죽는다 하여도 조금도 후회하지 아니할 것이다. 인간의 삶의 태도, 살아가는 길을 아는 것이란 이처럼 중대한 것이다.”(논어)

좋은 운을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끌어당기는 순간 나는 이미 운이 좋은 사람이 된다. 실재로 감사한 일들을 생각하거나 특히나 감사한 일들을 글로 쓰는 행위는 우울증 감소와 행복증진의 효과가 있다. 행복한 사람은 또 다른 행복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반대로 부정적이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나에게 또 다른 불이 찾아오게 하는 기도와 같다.

쉽게 생각을 해보아도 매사 부정적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는 한 번은 만나도 두 번은 만나기지기가 꺼려진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운이 좋은 사람이며 자신에게 좋은 일들을 스스로가 창조하고 있는 셈이다.

운이 좋은 사람에게 실패는 교훈이 되고 시간은 성장을 부추기는 바람이다. 또한 여의치 못한 환경은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보석과도 같은 동기부여가 된다. 반면에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팔자를 미리 정해 놓고 모든 상황을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의 틀로 생각하며 그 안에 자신을 가둔다. 그러니 소극적이고 툭하면 우울하고 전반적으로는 방황하는 모습으로 지내게 될 수밖에 없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운이 나쁜 사람이다. 그러니 끌고 갈 것인가. 끌려 갈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었고, 병사로만 10만 ,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 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 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테무진에서 칭기스칸이 되었다.

칭키스칸의 말이다.

칭기스칸에게 환경, 가난, 무지는 오히려 그를 성장시키는 바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운을 창조했다. 이렇게 극단적인 불우한 환경이 아니더라도 운명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둬 둔 사람들은 궂은 날씨에도, 약간의 피곤함에도,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에도 자신을 뒤흔든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렇게 흔들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을 흔들리게 한 원인은 세찬 바람이라고 말한다.

셀프리더에게 운이란 경영가능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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