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돈의 독습

[한국강사신문 윤영돈 칼럼니스트] "기분 좋은 잠과 부담 없는 독서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두 경우 모두 심장의 고동이 부드러워지고 긴장감이 풀리며, 마음은 침착해진다. 최선의 독서는 잠자리 곁에서의 독서이다."(소설가 린위탕)

사진 왼쪽부터 강효석, 윤영돈, 김성회, 최효찬 <사진=한국강사신문>

‘자녀교육’과 ‘독서교육’하면 떠오르는 저자는 누구인가? 자녀경영연구소 최효찬 소장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이 있고, 『잠자기 전 30분 독서』, 『한국의 메모 달인들』, 『한국의 1인 주식회사』,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등이 있고, 비교문학 분야에서 『하이퍼리얼 쇼크』를 비롯해 『일상과 공간과 미디어』가 2008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었다.

최 소장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7년간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의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를 하며 우리 사회의 리더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에 ‘인문학 산책’ 칼럼을, 한경비즈니스에 ‘최효찬의 문사철 콘서트’를 3년간 연재했다. 인문학의 깊이 있는 글쓰기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선정한 ‘한국의 저자 300인’에 뽑혔다.

그가 마지막에 꺼낸 이야기는 ‘책을 읽어 묵혀서 초서(鈔書)를 하는 것’이었다. 오마에 겐이치는 ‘지식의 쇠퇴’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지식의 쇠퇴는 좁은 시야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의 젊은이뿐 아니라 모두들 자신의 주위밖에 보지 않으며, 그 결과 사고의 정지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은 시대,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최효찬 박사의 숙독(熟讀)을 따라가 보자.

♦ 밑줄 긋지 말고 생각이 여물 때까지 묵혀라!

최소장은 책을 읽다가 좋은 문구를 만나면 책의 모서리를 접는다고 한다. ‘풀 텍스트(full text)’를 읽고 그 책이 얼마나 접었냐가 결국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책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 결국 그곳만 보게 된다고 한다. 좋은 구절만 밑줄을 긋고 어떻게 응용할까봐 생각하면 올바른 책 읽기를 할 수 없다. 책 끝을 접어야 나중에 그 페이지를 다시 읽고 초서를 할 수 있다. 밑줄만 긋지 말고 책을 접어두고 생각이 여물 때까지 접독(讀)을 해야 한다. ‘접독(讀)’이란 책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접속(connection) 과정이다.      

요즘 스마트폰 유틸리티 앱 중에도 텍스트 스캐너(text scanner)를 사용하면 사진의 문자를 텍스트로 바꿔준다. 하지만 최소장은 “이 앱을 사용하면 결국 머리에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내 손으로 쓰거나 타이핑을 쳐야지 자기 것이 된다.” 책을 읽을 때는 다산 정약용처럼 반드시 ‘초서’를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초서란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을 발췌해 메모해놓는 것이다. 최소장은 수년 전부터 초서하는 습관을 들였고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초서’ 파일을 참고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손으로 필사하거나 타이핑을 치면 안된다. 그 내용이 내 것이 되기까지 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은평한옥마을 힐링한옥 채효당(최효찬 박사 직접 집을 지은 과정도 책으로 집필중이다) <사진=한국강사신문>

♦ 조급하게 읽지 말고 숙성시간을 기다려라!

책을 읽는 과정은 숙성시간이 있어야 한다. 1주일이든 1달이든 숙성된 이유에 달려들어서 초서를 한다. 초서할 때 가장 놓치는 것이 페이지 넘버링(page numbering)이다. 처음 초서할 때 안했다가 다시 하려고 하니 시간이 엄청나게 든다. 그리고 초서한 것을 인용하려고 해도 페이지 넘버링이 없으면 책을 찾아야 하고, 책을 주었거나 팔았다면 난감해지기 마련이다. 지식을 남에게 나누어줄 때도 출처가 없으면 그만큼 신뢰를 얻기 힘들다. 잘못하면 남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호도할 수 있다. 꾸준한 초서로 데이터링을 하는 성실함이 결국 지식의 양을 확보되어야 지식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     

책을 살 것인가? 빌려볼 것인가? 최효찬 소장은 “지나치게 매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매서(買書)란 읽고 싶은 책을 돈을 모아서 사서 읽는 것을 말한다. 차서(借書)란 도서관에서 빌려서 책을 읽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으니 책을 보관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원전이 아니면 소장할 가치가 없는 경우도 있다. 단순하게 인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는 것이 맞다. 장서(藏書)란 원하는 책을 간직하는 것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소유욕이 있기 마련이다. 소장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인용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서 형편에 맞게 책을 사거나 빌려서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책을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책읽기란 원래 뒤죽박죽이다. 그 때 그 때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예를 들면 동양고전이나 그리스 신화 등 무거운 주제를 선택한다. 반대로 수필이나 여행기 등 가벼운 주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칼럼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단숨에 책을 읽고 초서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가끔 대학교 다닐 때 읽었던 시집을 다시 꺼내본다. 행복한 책읽기를 위해서는 ‘끌리는 책’을 집어야 한다. 최소장은 고등학교 때 고전 중에 처음 완독한 책이 톨스토이의 『부활』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3월에서 5월까지 읽었던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당시에 덥기도 덥고 공부도 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책읽기의 즐거움’이 지금 책과 함께 하는 원동력이 된다.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관문이 된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도 처음부터 몰입이 되지 않아서 1권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겨우 1권을 읽고 2권에 접어들자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개별 인물들의 이야기와, 마치 등불처럼 위기에 처한 최 참판 댁의 운명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16권에 이르는 토지를 읽는데 6개월이 걸렸다. 그 이후에야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가족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전집을 구매했다.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태백산』, 『아리랑』, 이문열의 『삼국지』, 등 대하소설을 읽어나간 것이 책읽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어릴 때 책읽기의 경험이 나이 들어서도 책과 함께 하는 원동력이 된다.     

힐링한옥 채효당 앞에서(왼쪽부터 최효찬, 김성회, 강효석, 윤영돈) <사진=한국강사신문>

♦ 책을 꽂아놓지 말고산책하면서 읽어라

요즘은 과시독서(誇示讀書)라고 몇 권을 읽었는지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페이스북에서 책 몇 구절을 인용하지만 실제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내용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책읽기’는 ‘그림그리기’와 비슷하다. 스케치할 때는 전체 큰 그림을 거칠게 그리는 과정이라면 스케치가 완성된 후에는 물감을 어떻게 색칠하는 과정이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일침』에서 ‘우작경탄’ 독서법을 알려준다. ‘우작(牛嚼)’은 소가 되새김질하듯 “한 번 읽어 전체 얼개를 파악한 후, 다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는 정독”이다. 처음엔 잘 몰라도 반복해 읽는 과정에서 의미가 선명해진다. ‘경탄(鯨呑)’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 온갖 것을 통째로 삼키듯 “고래가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어치우듯 폭넓은 지식을 갈구한다. 자칫 욕심만 사나운 수박 겉핥기가 되는 것이 문제다.” 독서는 “씹지 않고 삼키기만 계속 하면 결국 소화불량에 걸린다. 되새김질만 하고 있으면 편협해지기 쉽다. 소의 되새김질과 고래의 한입에 삼키기는 서로 보완의 관계”이다. 큰 아웃라인을 그리면서도 작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마침표도 중요하지만 쉼표도 중요하다. 책을 꽂아놓지 말고, 산책하면서 읽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 잠자기 전 30분 독서를 하면서 경험치를 익혀라

아시아 최대 갑부인 홍콩의 창장(長江)그룹 리자청(李嘉誠) 회장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리카싱은 어린 시절부터 한시를 외웠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서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아들에게 “책에서 길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자선 사업과 엄격한 자녀 교육으로 유명하다. 그는 두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먼저 인간이 돼라”고 했다. 돈보다 인간의 도리부터 가르친 덕분에 두 아들은 미국 유학 시절 갑부의 아들이란 사실을 드러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는 일을 하면서 학비를 보탰다. 리카싱은 매일 ‘잠자기 전 30분’ 이상 책을 읽는 습관을 60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아버지의 책 읽는 습관은 아들에게 이어져 큰아들 리쩌쥐는 자신의 전공인 건축 관련 책을 읽는다. 독서 습관은 영국 런던대 행동 연구에 따르면 최소 66일 동안 실천해야 반사적인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잠자기 전 30분 독서’를 두 달 동안만 실천한다면 평생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최소장은 “독서는 나에게는 친구와 같다. 심심함을 채워주고, 내가 의미 없다고 느낄 때 허전함을 달래주고, 죽음을 생각할 때 죽음에 대해서 위안을 삼기도 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책을 통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잠자기 전 30분 독서를 통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면, 몸은 잠자고 있지만 머리는 수면시간에 익히는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최효찬 박사의 숙독을 응원한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읽었으면 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떻게 묵힐 것인지 초서를 작업하고 있다. 책을 잡으면 우선 풀 텍스트로 읽고, 묵혔다 초서를 하라. 이 저자가 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그래야 책이 가벼워지고 공부가 깊어진다. 책을 묵히지 않으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인생의 책에서 어떻게 묵히고 초서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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