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조전회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은 제주도다. 제주도에는 세 가지가 많고 세 가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삼다도라고 하고 삼무도라고도 한다. 삼다도(三多島)는 세 가지가 많은 섬이란 뜻이다.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아서 나온 말이다. 삼무도는 도적이 없고 거지가 없고 대문이 없다는 말에서 나왔다. 예로부터 제주의 땅은 척박했다. 농사를 짓자니 땅이 교박하고 고기를 잡자니 바람이 거셌다. 사람 사는 곳이니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낳아 키웠다. 우리네 부모가 다 그랬듯 제주의 부모도 척박한 땅을 일구며 아이를 키웠다. 새끼들 입에 밥 한술 떠주려고 몸을 굴려 밭을 갈고 숨을 조여 물질을 했다. 세 가지가 많은 땅에서 제주민들은 살아가기보다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제주에 한 지인이 있다. 그곳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지인과 가끔 제주 이야기를 했다. 내가 삼다도를 얘기했을 때 지인은 동의하지 않았다. 돌, 바람, 불이 많다고 했다. 불? 화산이 터진 땅이라 그런가? 아직도 땅밑에 마그마가 끓는다는 얘기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인의 말은 이랬다. 돌이 많고 흙이 적어 곡식이 부실하단다. 바람이 거세서 물고기 잡기도 쉽지 않단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으니 한량도 많아서 여인들이 일을 더 많이 했단다. 여인은 남편 도움 없이 새끼를 키우다 보니 숨 참고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가 되고 여린 몸 쟁기 삼아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단다.

살아내야 한다는 의지는 불이 되었을 것이다. 그 불은 물질로 식은 몸을 덥히는 온기가 되고 쟁기질로 고단한 몸을 일으키는 기운이 되었다. 키우고 일구는 고단함에도 삶의 의지는 불탔다. 그렇게 살았고 그래서 불이 되었단다. 제주는 돌, 바람, 불이 많다는 지인의 말을 이해했다.

얼마 전 강연을 들었다. “사람의 간절함은 언제 생길까요?” 연사가 질문했다. 나도 모르게 “토요일 저녁에 번호 6개?” 물론 속으로 대답했다. 가끔 재미 삼아 로또를 사는 날이면 그 날 저녁은 늘 간절하다. 연사의 말이 이어졌다.

“어느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할 때보다 가진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더 큰 간절함을 갖는다고 합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간절함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것처럼 낯설었다. 없는 것을 이루는 것보다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새삼 깨닫는다. 없는 것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이 열정이라면 가진 것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노력이다. 열정과 노력 없이는 이뤄지는 것도 지켜지는 것도 없다. 간절함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수년 전 기업에 몸담고 있을 때였다. 신사업을 성장시키지 못하던 내게 어느 날 상사가 말했다. “자네는 간절함이 없는 것 같네.” 열심히 일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래서 황당했고 분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업을 더 키우지 못한 직원의 능력을 탓한 것이 아니다. 도전하지 않으려 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세를 나무랐던 것이다. 물론 그런 깊은 뜻에서 뱉은 말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평소 비아냥을 양념처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니 그저 약이려니 생각했다.

부자가 되려 하고 성공하려 했다면 제주의 여인은 불이 아닌 그저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살아내야 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로 그녀들의 삶은 간절했다. 능력껏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했었다. 지금 보니 사업 성장만 고민했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으니 상사의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이 간절한가? 가진 것에 따라 지켜야 할 것도 다를 것이다. 회사이거나 가족일 수 있다. 또는 사람이거나 명예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간절히 바라고 열망한다면 그것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꼭 지켜야 하는 것,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그것은 건강이다.

“건강한 몸과 긍정적인 마음이면 못 할 일이 없다.” 『오세진의 몸이 답이다(새라의숲, 2018)』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야 한다. 지켜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강인한 몸과 마음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뉴스에 따르면 올여름은 기상 관측 사상 최고 더위라고 한다. 돈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건강한 몸과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한여름 장롱 안에 모피코트처럼 쓸데없다.

제주 방언에 이런 말이 있다. “돌담에도 트멍은 있다.” 센 바람에도 끄떡없는 돌담도 바람 지나갈 길은 내어준다는 말이다. 바쁘고 쉼 없는 일상에 여지를 주자. 즐거운 사람들과 시원한 차 한잔하며 마음을 달래보자. 보듬는 가족과 함께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으로 몸을 위로해 보자. 그것이 지금 당장 건강해지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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