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유재천 칼럼니스트] 베를린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베를린 장벽이다. 같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더 익숙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 중이지만 통일이 된 독일에서 그 상징적인 곳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임을 더욱 절실하게 느낀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직업군인으로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친구 우형이를 만나러 강원도 화천을 찾았었다. 친구를 따라 칠성전망대라는 곳으로 갔다. 덕분에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전방까지 가봤다. 전망대에서는 멀리 북한의 민둥산이 보였다. 철조망을 경계로 남과 북은 분단되어 있다. 그곳에 섰을 때 나는 새삼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다.

유럽 자유여행에서 독일 베를린에 도착한 이튿날 나는 베를린 장벽 앞에 섰다. ‘East side gallery’라고 철거되지 않은 1.3km 길이의 베를린 장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통일 직후부터 총 21개국 118명의 예술가들에 의해 그림이 채워 완성된 갤러리라고 한다. 슈프레 강을 따라 걷다가 ‘East side gallery’를 따라 계속 걸었다. 냉전을 상징하는 예술 작품들이 계속 이어진다. 독특한 그림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벽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베를린 장벽을 더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체크포인트 찰리라는 곳으로 향한다. 이곳은 동서독 분단 시절, 미국이 통치하던 서베를린 지역의 국경 검문소다. 통일 후 동서를 가른 모든 국경 검문소는 철거되었지만 체크포인트 찰리는 관광 상품으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검문소에는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박물관 근처 곳곳에는 장벽의 일부를 그대로 걸어둔 모습도 보인다.

이제 베를린 장벽이 있던 분단선 앞에 선다. 벽은 허물어졌지만 그 흔적은 남아 있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동독 정부가 세웠다. 그 전까지는 왕래가 가능했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동독 정부가 세운 43km에 달하는 장벽을 세웠다. 나는 지금 그 장벽의 흔적 앞에 서 있다. 이주를 차단하자 동독에서는 자유의 외침이 커지고 체코로 월경하는 난민이 늘었다고 한다. 이에 동독 정부는 “난민의 서독 방문을 허락하겠다.”고 발표하는데 이것을 언론에서 ‘즉각적인 서독 방문 허락’이라며 잘못 보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베를린 사람들은 즉시 장벽을 부수고 서베를린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장벽이 붕괴되고 국경 초소가 개방되었다. 장벽의 공식적인 철거는 1990년 6월, 그리고 그해 10월 3일 마침내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고 한다.

유럽 자유여행에서 베를린 거리를 걷는다. 첫날 구매한 박물관 섬을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이 있다. 박물관 섬은 프리드리히 4세가 제안하고 훔볼트 대학의 설립자 훔볼트의 지휘 아래 당시 박물관들이 군집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박물관 안의 예술 작품들은 프로이센이 강성해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4개의 박물관이 있는 박물관 섬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수집했기 때문에 박물관 안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물, 그리고 이집트에서 발굴한 작품들도 있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대성당 앞에 섰다. 그 모습이 정말 웅장하다. 대성당 앞 광장 잔디밭은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모두 잔디밭에 앉아 베를린을 느끼고 있다. 대성당은 프로이센의 왕과 독일 제국의 황제를 배출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무덤을 위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매우 화려한 대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기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했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독일 최대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파이프 오르간을 감상하고 대성당 돔 전망대에 올라본다.

역시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힘겹게 오른 덕분에 베를린 전경이 보인다. 멀리 TV 타워라고 하는 365m 높이의 독일에서 가장 높은 송신탑도 보인다. 대성당에서 내려와 다시 베를린의 거리를 걷는다. 알렉산더 광장에 앉았다. 분수대 옆으로 사람들이 많다. 천천히 베를린에 있음을 느껴본다. 돌아가는 길에 ‘니콜라이 지구’라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지라고 하는데 골목마다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지나가는 길에 행인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한다. 곰 인형과 함께 찍었는데 베를린과 곰은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베를린이라는 도시 이름이 새끼 곰 Bärlin(베얼라인)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를린 곳곳에서는 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입구를 본떠 만든 개선문인 브란덴부르크 문에 간다. 근처에 있는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을 구경하고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한다. 유럽 자유여행 다음 목적지는 독일 드레스덴이다.

※ 참고자료 : 의미공학자 유재천 코치[前 포스코(POSCO) 엔지니어]의 『여행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도서출판 행복에너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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