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독서

[한국강사신문 윤영돈 칼럼니스트] "내가 책을 읽을 때 눈으로만 읽는 것 같지만 가끔씩 나에게 의미가 있는 대목, 어쩌면 한 구절만이라도 우연히 발견하면 책은 나의 일부가 된다."(윌리엄 서머셋 모옴)

요즘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은커녕 책을 든 사람도 찾기 어렵다.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유영만 교수는 신작 『독서의 발견』이라는 책을 들고 우리 앞에 섰다. 지식을 잉태하는 사람, 교육공학을 넘어서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를 만났다. 지금까지 80여 권의 책을 저술하고 번역해온 유영만 교수는 끊임없이 책을 읽어 왔다. 책을 읽고 사색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글을 써온 유영만 교수의 저력은 어디에 나오는지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를 청했다.

윤영돈 코치(좌측사진)와 유영만 교수(우측사진) <사진=한국강사신문>

♦ 당신은 책에 꽂힌 적이 있는가?

유영만 교수의 인터뷰는 서울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언덕 위에 있는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책으로 둘러쌓인 연구실에서 만날 때 유영만 교수는 우연히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저서인 [카메라 루시다]를 읽고 있었다. 절판된 그 책에 ‘스투디움’과 ‘푼크툼’ 두 가지 라틴어단어가 나온다. 쉽게 비교해보면, ‘스투디움(Studium)’은 예술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 정형화된 느낌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푼크툼(Punctum)’은 라틴어로 점(點)이라는 뜻으로 화살처럼 찌르는 특정작품에서 얻어지는 개인적 취향으로 강렬하게 꽂히는 느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사진의 경우,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작품이 구성하는 시각상의 어느 영역에서 갑자기 감상자의 눈을 꽂히는 부분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바로 이것을 ‘푼크툼’이라고 지칭했다. 푼크툼은 감상자의 시선이 작품에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은 바로 그 ‘푼크툼’ 때문이다. 좋은 책들은 보편적인 인식의 ‘스투디움’을 깨뜨리며 인지 충격을 안겨주는 마치 상처 같은 ‘푼크툼’들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인두 같은 한 문장’을 품고 새로운 지식의 의미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재미는 생각보다 큰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꺼낸 이야기는 “‘책’이라는 거울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유영만 교수의 탐독[耽讀]을 따라가 보자.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연구실 책장 <사진=한국강사신문>

♦ 책은 우연히 만날 때 빛이 난다

사람이 집중하고 몰입할 때보면 눈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집중하고 몰입하는 이유는 즐겁고 신이 나기 때문이다. 아이가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는 게임이 잘 몰입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책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책에 빠져 봐야 건질게 없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옛날보다 휴대폰에 각종 동영상, 게임 등 볼 것이 많아졌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어릴 때 책에 빠질 수 있도록 더 많이 사회적 합의와 설계가 필요하다.

유영만 교수는 “섬광 같은 책의 만남은 우연히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인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책을 우연히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강요된 책 읽기는 결코 독이 된다. 책이 우연히 자신의 삶 속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자발성이 필요하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라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대사처럼 말이다. 책은 우연히 생각하고 있었을 때는 생각을 정리하거나 책이 감정이 힘들었던 때에는 위로해준다. 『독서의 발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어야 진정한 인간관계의 맥을 짚을 수 있고, 책을 읽어야 안목과 시장을 남다르게 읽을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

유영만 교수는 “젊을 때 우연히 만나는 책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고 말한다. 공고를 졸업한 스물쯤, 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 바로 고시체험 수기집이었다. 공고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기가 담긴 책을 읽은 후, 그 길로 고시 공부를 시작한다. 책을 읽고 뛰어들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신나는 공부는 아니었다. 고시 공부하던 책을 모두 불살라버린 후 한양대에 교육공학과에 입학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모교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가슴 뛰는 공부를 하고 있다.

유영만 교수 <사진=한국강사신문>

♦ 당신은 책을 어디서 만나는가?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서점’이라는 공간에 자주 가야 한다. 책을 만지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은 결코 좋은 책을 만나기 어렵다. 직접 가서 눈으로 매력 있는 책을 하나하나 살펴봐야 한다. 뇌과학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책을 읽는 자극은 후두엽으로 전해진 다음 전두엽에도 자극이 전달되어야 하는 데 비해 스마트폰, 게임, 그리고 TV 드라마의 자극이 전두엽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어야 책 읽는 습관이 생긴다.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것은 핑계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질문이 없어진 상태이다.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이미 삶이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만 계속 먹지 않는다. 제발 그만 먹어야 될 게 바로 마음먹기다. 마음만 먹고 행동하지 않아서 세상의 변화가 시작되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해서 두통이 생긴다.” 진짜 책을 읽으려면 몸으로 읽는 체독(體讀)을 해야 한다. “오히려 다소 거부감이 들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옳다라는 사실을 확인해봤자 내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양식이 마련되지 않는다.” 책을 사는 것이 나중에 책을 읽고 책에 낙서하면서 책이 자신을 관통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 아니라 삶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기형도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오늘 삶에도 밑줄을 그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단지 책에 나온 좋은 문장만 어떻게 써먹을까만을 생각하지 말고, 텍스트(text)에 읽지 말고 컨텍스트(context)를 읽어봐야 한다. 책을 만나야 책에 대한 근육이 생긴다. ‘내 생각’을 잉태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독서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나쁘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바라본 유영만 교수의 얼굴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이 결국 오늘의 유영만 교수를 만든 것이다.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연구실 풍경 <사진=한국강사신문>

유영만 교수의 탐독을 응원한다. 오랜 세월 사람을 만나도 내가 아닌 이상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당신은 인생의 책을 우연히 만났는가? 우선 핑계 대지 말고, 책을 잡으면 탐독하라. 목적성을 내려놓고 우연히 책을 만나야 공부가 깊어진다. 책을 읽지 않으면 섬광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독서의 발견’은 결국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는 행위이다. 당신은 지금 인생의 책에서 어디에 밑줄을 긋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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