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도영태 칼럼니스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지 마라. 슬픔이 시간이 지나면 곧 기쁨의 순간이 찾아올지니”(중략)

한때 가슴 뭉클하게 정신적 위로를 삼았던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시중 한 구절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지금 이 시는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다. 상대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필자는 푸시킨의 시 속에 담긴 심상은 애써서 현실의 어려움을 위로하고 긍정적으로 합리화 하려는 자기 방어기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그토록 지독히 힘들게 하고 나를 배신하게 하는 데 노여워 말고 참으라니. 그저 시간이 가면 노여움의 나사가 자동으로 풀리듯 뼈아프고 지친 과거가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현실은 늘 그런 것이라 여기고 참고 참고 또 참아보라고 하지만 너무 참기만 하다가 화병(火病)걸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삶이 나를 속이면 반드시 노여워하는 역발상으로 배반당한 현실에 굳세게 맞서야 한다. 세상에 별별 사기꾼이 난무하고 있다 보니 노여워 않는 착한사람들이 늘 당하기만 하는 것이다. 참는 자에게 복(福)이 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웃기는 소리! 참는 자에게 자칫 박복(薄福)만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좀 더 능동적으로 직시하고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정의감을 훼손하는 불의에는 어떤 형태든 노여움을 표시해야 한다.

선배랍시고 마냥 대접받으려 하고 후배에게 굳은 일만 시키고 한 움큼의 배려도 하지 않는 못된 선배에게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으로 당당히 맞선다. 비즈니스에서 이리저리 꾀를 부리며 제 몫만 챙기려는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이유를 밝히고 비즈니스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현실과 적절히 타협하며 편법을 자행하는 사람들의 비리를 보게 되면 질끈 눈을 감지 말고 불끈 주먹을 쥐어야 한다.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나의 희로애락을 쿨하게 표현하도록 해야만 내 삶을 속이려고 하는 나쁜 것들로부터의 진입 장벽을 높일 수 있다. 자기계발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성과가 뒷받쳐 주지 않는다?

이건 분명 삶이 나를 속인 것이다. 이른바 ‘노력의 배신’이요 ‘노력의 분노’이다. 이럴 때 푸시킨 시를 떠올리며 위로하지 말고 넓은 세상을 향해 불만을 목소리를 높이자. 실컷 울 수 있으면 울어보자. 후련해 질 때까지.

결국 나의 감정을 적절하게 뿜어내야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속으로만 삭히려 하다간 속병이 난다. 내적으로 삶에 대한 노여움이 극에 달해 자살행위라는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삶에 대한 노여움은 적합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홍보해야 한다. 적어도 나의 삶은 속으로 삭이는 수렴형 인생보다 겉으로 뿜어내는 발산형 인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과거에는 정말 힘든 배우자를 만나도 그동안의 정 때문에, 자식 때문에 그 힘든 고통을 짊어지고 동반했지만 오늘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있는 선택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이혼경력을 치부로 삼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되었다. 철저하게 나를 속이는 삶에 대한 반항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나의 삶이 나로 하여금 노여움을 준다면 분함을 애써서 삭히지 말고 적절한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삶의 분출구를 만들도록 하자. 친한 친구에게 허심탄회하게 현재 삶의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친 삶과 나를 배반하는 삶에 짜증을 내라. 정말 노여울 경우에는 노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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