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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우자(愚者)는 체험에서 배우고 현자(賢者)는 역사에서 배운다는 격언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타인의 경험을 무시하면서 자기 체험에서만 배우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기 체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구성된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이다. 다양한 사람의 구체적인 체험이 누적되어 다른 사람도 공감하기 시작하면 한 개인의 체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객관화되지만, 그 경험도 다시 다른 사람의 체험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비슷한 말 같지만 차이가 있는 것 같은 두 개의 단어, 바로 경험과 체험이다. 운전석 옆 좌석에 앉아서 운전자가 운전하는 대로 타고 가다가 내리면 자신이 어디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직접 운전해 본 사람은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해도 조수석에 앉아서 온 사람보다 훨씬 잘 기억한다. 조수석에 앉아서 머리로 인지했거나 간접적 매개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는 과정이 경험이다. 이에 반해서 체험은 운전을 직접 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을 깊이 고민하면서 몸으로 겪는 과정을 말한다.

직접 몸을 움직여 깨닫는 것과 남의 경험은 천지 차이

경험은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났지만 특별한 기억이나 추억으로 간직되지 않았거나 의미부여가 되지 않아서 스쳐 지나간 흔적을 말한다. 경험은 나 아닌 제3자가 겪어본 일을 내가 지칭할 때에도 쓴다. 이처럼 경험은 당사자의 주관적 가치판단이나 의미부여가 배제된 상태를 지칭한다. 반면에 체험은 동일한 상황에서 다르게 보고 느낄 수 있으며 피부로 와 닿는 과정도 다르므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다. 경험이 객관적이고 추상적이라면 체험은 주관적이고 구체적이다. 하느님에게 경험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고 체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아무리 좋은 하느님의 말씀도 내가 직접 몸을 움직여 깨닫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경험은 반복될 수 있지만 체험은 반복될 수 없다.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일을 반복해서 겪는다고 동일하게 체험되지 않는다. 체험은 매번 다르게 주관적으로 느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경험과 비교하면 체험은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동일한 체험을 했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인식의 수준과 깊이, 깨닫는 교훈과 의미가 다른 이유는 동일한 경험을 했어도 그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체험은 특정한 개인이 특수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겪은 일이기에 보편적인 언어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되는 방식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때도 있다. 본인이 체험하는 과정에서 몸소 부딪히고 느꼈던 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느낌은 오지만 내 느낌을 앎으로 표현하면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인의 특수한 체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공감이 간다면 체험은 이제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믿음이 깊어지면서 직접 하느님을 만났다는 한 개인의 특수한 체험은 체험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애를 낳으면서 체험한 산통을 애를 낳아본 체험이 없는 남자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한들 이해할 길이 없다. 다른 사람의 체험이 나에게는 누군가 체험한 경험으로 들릴 뿐이다. ‘경험의 체험화’를 통해 나만의 독창적인 지식이 특수화되어 탄생하는 것이며, ‘체험의 경험화’를 통해서 나만의 독창적인 지식이 일반화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체험으로 체화시키지 않으면 경험은 먼발치서 들리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체험 없는 경험은 공허할 뿐이고, 생각 없는 체험은 맹목일 뿐이다.

※ 출처 : 한국HRD교육센터 전문가 칼럼

 

<사진=유영만 페이스북>

유영만 교수는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플로리다주립대학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탈을 꿈꾸는 지식생태학자이다. 세상은 원래 그렇고, 당연하며, 늘 그래왔다는 식의 ‘고정관념’은 ‘고장 난 관념’이요, ‘상식’이 쌓여갈수록 ‘식상’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저서로는 <인문의 길 인간의 길>, <공부는 망치다>, <나는 배웠다>, <체인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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