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18일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기획 ‘가家를 넘어 국國을 그리다’ 편이 방송된다.

[사진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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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家를 넘어 국國을 그린 이방원의 킬방원 리스트>

5년 만에 돌아온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시작과 동시에 높은 관심과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태종 이방원’의 주인공, 주상욱이 <역사저널 그날>에서 밝히는 ‘태종 이방원’의 진짜 모습은?

1부에서 가문을 위해 더 큰 역적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이방원은 그 이름도 살벌한 킬방원 리스트(?)를 작성한다. 하지만 그토록 지키겠다던 가족들의 이름까지 발견되고....가족을 지키던 이방원, 어쩌다 형제와 처남들까지 제거하게 되었을까? <역사저널 그날> 340회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기획 두 번째 시간! <‘가’를 넘어 ‘국’을 그리다>에서 이방원이 태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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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 신덕왕후와 원경왕후>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공통점은? 남편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 부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 말 명문가에서 태어난 강씨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해 역적이 될 뻔했던 이성계 장군을 조선의 태조로 만들었다. 역시 고려의 재상을 역임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민씨는 정세를 내다보는 통찰력으로 다섯째 아들로 왕위 계승순위 후보에도 없던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데 힘을 보탰다.

고려의 여인으로 태어나 조선의 왕비가 된 두 여인. 신덕왕후 강씨 역을 맡은 예지원 배우와 원경왕후 민씨 역을 맡은 박진희 배우는 어떻게 이 인물을 표현하고자 했을지. 역사저널 그날이 예지원, 박진희 배우에게 연기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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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아들, 태종의 업적>

역사 속 훌륭한 성군의 앞에는 기반을 튼튼히 다진 왕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성군 세종대왕의 이전에 태종이 있었다. 정도전이 조선의 설계자라면 이방원은 실질적으로 조선을 정비한 사람이었다.

태종은 한편으로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힘썼다. 킬방원 리스트를 보고 당황했던 주상욱 배우, 그가 자신감을 찾고 어깨가 으쓱해질 만큼 대단했던 태종 이방원의 업적들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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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선택, 태종의 선위>

왕위에 올라 최고의 권력을 잡게 된 태종 이방원은 의외의 선택을 한다. 세자에게 선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세자인 충녕을 비롯한 신하들의 만류에도 태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네가 성군이 된다면 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괴물로 남을 것이다. 이제 너의 차례다.”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아들인 충녕에게 당부하는 아버지 태종 이방원. 주상욱의 소름 돋는 메소드 연기에 온 패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왕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던 사람 이방원 이야기는 KBS 1TV 340회<역사저널 그날>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기획 2부 ‘가를 넘어 국을 그리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시간은 12월 18일 토요일 저녁 8시이다.

*<태종 이방원>

조선의 제3대 임금이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임금이 된 뒤 왕권 강화에 힘썼으며, 정치 제도와 조세 제도를 정비하는 등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펼쳐 사회를 안정시켰다.

이방원은 1367년에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이는 등 아버지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 데 앞장섰으며, 아버지가 임금(태조)이 된 후에는 정안군에 봉해졌다.

하지만 태조가 정도전 등과 함께 배다른 동생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그는 1398년에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때 그는 이방석과 정도전을 제거하고 자신의 둘째 형인 이방과(정종)를 세자로 추대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400년에는 넷째 형인 이방간과 권력을 놓고 다툰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이 싸움에서 이방원은 이방간을 제거하고 세자의 자리에 올랐다.

사실상 최고 권력자가 된 이방원은 왕권을 튼튼히 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했다. 가장 먼저 개인이 군사(사병)를 거느리지 못하게 했으며, 이전까지 개인이 거느렸던 사병들은 모두 나라에 속하게 했다. 또한 노비변정도감을 실시해 불법으로 빼앗은 노비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비의 신분이나 상속 관계가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공신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같은 해에 정종으로부터 임금(태종)의 자리를 물려받은 뒤에는 본격적으로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한 개혁에 들어갔다. 문하부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설치했으며, 의정부의 일을 6조에서 나누어 맡도록 했다. 어지럽던 지방 제도도 8도로 고쳐 정비했으며,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쳐 전국의 많은 절을 없앤 뒤 절이 갖고 있던 토지와 노비를 모두 거둬들였다. 그리고 16세 이상의 남성에게는 신분에 관계없이 오늘날의 신분증과 같은 호패를 가지고다니도록 하여, 전국의 인구를 파악하고 군역을 징수했다.

태종은 국방에도 힘써 노략질을 일삼는 여진을 물리쳤으며, 활자를 만드는 주자소를 세운 뒤 동활자인 계미자를 만들어 《고려사》 등을 편찬하게 했다. 집집마다 베를 거두었던 호포제를 폐지했고,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다.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해 조선의 제3대 임금이 된 이방원은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펼쳤다.

태종은 임금의 자리에 있는 동안 왕권을 튼튼히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 때문에 그를 도왔던 신하들이나 외척들은 공을 세우고도 쫓겨나는 처지가 되었다. 태종은 세력이 지나치게 커진 공신들은 귀양을 보내고, 자신의 처가뿐 아니라 왕자들의 처가 세력까지 모두 왕실 주변에서 몰아냈다. 심지어 그가 권력을 잡고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처남 4형제를 처형했을 정도였다.

태종은 1418년에 셋째 아들인 충녕 대군(세종)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상왕이 된 다음에도 세종의 장인을 죽이고 장모를 노비로 삼는 등 왕권의 안정을 위해 힘쓰다가 1422년에 세상을 떠났다.

<역사저널 그날> '역사'와 '이야기'의 만남. 우리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인 하루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역사가 움직인 터닝 포인트인 '결정적 하루'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교양과 재미가 있는 인포테인먼트(정보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날의 주연과 조연은 누구였으며, 그 당시 세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고,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출연진이 수다로 풀어보는 본격 역사 토크쇼이다. 프로그램 정보, 공식영상, 회차 정보, 출연진(최원정·정병준·박태균·최태성·이시원 외) 등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지식 다큐멘터리 방송이다. 최고 시청률은 6.7%(제공 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 참고자료 : 태종 이방원 (한국사 사전 3 - 나라와 민족·기구와 단체·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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