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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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오명호 칼럼니스트] 문제 하나. 당신이 양치기 소년이라고 가정해보자. 양을 목축하는 일이 주업인 비즈니스맨이다. 당신은 오늘 잘 키운 양 90마리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큰 강을 만났다. 다행히 강가에는 양을 운반해주는 뱃사공이 영업을 하고 있다.

뱃사공에게 운반을 의뢰하니 뱃삯으로 ‘건너는 양의 절반’을 요구한다. 이 동네 뱃삯을 책정하는 기준인 모양이다. 당신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뱃사공을 이용하지 않고 강을 건널 방법은 현재로선 없거나 돌아가려면 너무 멀다. 그리고 뱃사공은 한 명뿐이다.

뱃사공과 운반비 협상이 가능하다고 할 때, 당신이라면 양을 몇 마리 지불하고 강을 건너갈 수 있을까?

물건 값을 깎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방법은 ‘많이 사겠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소위 ‘단골혜택’을 적용해 할인을 요구하면 효과가 있다. 예컨대 “앞으로 시장에 갈 때마다 이 배를 이용할 테니 10마리만 깎아주시오.”라고 제안한다든지, “제가 양치기 소년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 배를 이용하도록 입소문 내 줄 테니 반값으로 해주시오.”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다음은 강의에서 주로 나오는 답변들이다.

- 상대방은 양이 아니라,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양을 주지 않고 양털로 협상해 본다.

- 우선 시장에 가서 많이 팔면 많이 주고, 적게 팔면 적게 주기로 협상한다.

- 돌아올 때도 강을 건너야 하니 다음번 뱃삯까지 같이 협상한다.

현실에서 적용해볼만한 답변들이다. 하지만 모두 결과를 장담하긴 힘들다.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NO’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어떤 제안은 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양치기 소년에게 더 이익인 제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년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뱃사공은 자신이 손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독점영업중이다.

정답은 30마리다. 90마리를 건너려면 ‘건너는 양의 절반’인 45마리를 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30마리만 주고 건너갈 수 있을까? 실마리는 뱃삯 지불 방법에 있다. 90마리를 다 건너는 것이 아니라, 30마리를 남겨두고 60마리만 건너면 된다. 그러면 ‘건너는 양의 절반’인 30마리가 뱃삯이다. 뱃사공의 요구대로 제값을 다 치른 것이니 뱃사공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남겨 둔 양 30마리로 뱃삯을 지불하면 끝.

우리 삶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답을 알면 너무나 쉽다. 그런데 우리는 왜 60마리만 건널 생각은 못하는 걸까? 고정관념 때문이다. 비용 지불 방법에 관한 우리 고정관념은 ‘후불’이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한 후 돈을 지불하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 사고도 90마리를 먼저 건넌 다음 비용을 생각하게 되고, 그 후 뱃사공을 설득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실패 확률이 높다. 나에게 더 이익인 방식으로 뱃사공을 설득할 수 있을거란 착각이 협상을 망친다. 협상은 상대를 설득하기 이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게 바로 전략이다. 뱃사공을 설득하지 않고 선불이냐 후불이냐만 고민해도 15마리, 즉 33%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상대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던지는 사람이 진짜 고수다.

그렇다면 30마리가 최선일까?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양치기 소년의 원래 목적은 뭐였던가? 그렇다. 시장에 가서 양 90마리를 좋은 가격으로 잘 파는 것이다. 뱃삯을 줄이는 게 아니다. 뱃사공과의 협상은 그 과정에서 생긴 변수일 뿐이다. 다시 말해 뱃사공과 협상하지 않고 시장에 가서 양 90마리를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고 다 팔 수 있으면 충분하다. 양치기 소년의 궁극적 협상 목표다.

여기까지 왔다면, 먼저 양 2마리를 배에 태우고 강을 건너가보자. 뱃사공의 요구대로 뱃삯은 1마리를 지불하면 된다. 그리고 남은 1마리를 데리고 시장으로 간다. 양을 샘플로 보여주며 구매자를 찾는다. “여기 튼튼하고 건강한 양 89마리를 팝니다.” 그런 다음 가격협상을 마친 후 강을 건너와 구매자에게 나머지 양을 다 넘긴다.

물론 이 경우 구매자와 가격협상에서 운반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남는다. 그러나 30마리를 운반비로 지불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면 훌륭한 선택이다. 또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 고객이 강 이쪽 편에 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운반비는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협상 인사이트는 3가지다.

첫째, 좋은 협상안이란 내 기준에서 좋아선 안된다. 나만 좋은 협상안은 백이면 백 실패다. 바로 그 역지사지(易地思之)다. 협상안은 철저히 상대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어떤 협상안을 떠올렸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상대라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둘째, 기존 상식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협상은 승패 대결로 끝나는 줄다리기란 고정관념, 협상은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협상을 망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떻게 고객을 설득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고객이 찾게 만들까’를 고민해보자.

셋째, 협상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협상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승패에 집착해 원래 목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선 졌다’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궁긍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수단이 협상의 기술이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오명호 칼럼니스트는 기업협상교육 전문회사 <열린협상연구소> 소장이다. 삼성그룹, 신세계, KCC, 한라, 동원, 아모레퍼시픽 등 기업 실무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협상 실습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지자체인재개발원, 법무연수원 등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갈등관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한 수』와 『협상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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