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애드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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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오명호 칼럼니스트] ‘어떻게 하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현장. 시어도어 루스벨트 선거캠프에서 지방 유세를 떠나던 중 심각한 문제를 발견한다. 홍보용으로 제작해 놓은 팸플릿 300만 부에 인쇄된 루즈벨트 사진이 저작권에 위배된다는 사실이다. 작은 글씨로 사진 하단에 ‘Moffett Studios, Chicago’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캠프는 이대로 선거를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상대 공격이 들어올 경우 선거에 치명적이다. 엄연한 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선거일까지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까? 조지 퍼킨스 선거캠프 본부장은 고민에 빠졌다. 가장 쉬운 방법은 팸플릿을 사용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는 것이었다. 많은 참모진 역시 같은 방법을 조언했다. 하지만 이것은 대통령 당선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당시는 후보자를 알릴 방법이 대중 연설과 플릿이 유일하다. 지금으로 치면 인터넷 혹은 SNS를 안 쓰고 선거를 치른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남은 해결책은 저작권자와 협상을 해보는 방법이다. 당시 저작권법은 사진 한 장당 1달러의 저작권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300만 부를 현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 원이 넘는 액수다. 아무리 대통령 선거라지만 생각조차 해볼 수 없는 돈이었다. 만약 협상을 잘해서 절반으로 깎아도 300억 원이다. 10%라도 60억원이다. 돈으로 협상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조지 퍼킨스는 전략을 수정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저작권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다. 상대는 젊은 시절 사진작가로 명성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여기 저기 출품도 하고, 각종 대회에 참가한 이력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평범한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조지 퍼킨스는 바로 그 점을 포착했다. 그리고 전략을 고민한 후에 저작권자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We are planning to distribute millions of pamphlets with Roosevelt’s picture on the cover. It will be great publicity for the studio whose photograph we use.How much will you pay us to use yours? Respond immediately.”

“선거 홍보 팸플릿 수백만 부의 커버에 루스벨트 후보의 사진을 인쇄해 배포할 계획입니다. 사진이 실리게 되면 전국적으로 귀사의 스튜디오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귀사의 스튜디오 사진을 실어주는 대가로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 확인 후, 즉시 답변 바랍니다.”

며칠 후 저작권자로부터 답장이 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We've never done this before, but under the circumstances we'd be pleased to offer you $250.”

“이런 제안에 응해 본 적은 없지만, 250달러를 낼 용의가 있습니다.”

협상학에서 유명한 사례다. 많은 석학들은 이를 20세기 최고의 협상으로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억 원이 걸린 문제를 단 돈 10원 한 푼 들이지 않고, 게다가 상대의 후원금까지 받으면서 해결한 협상이다. 정보 파악의 중요성, 상대의 숨은 욕구, 협상 프로세스 등 수많은 협상 기술과 전략이 녹아 있다.

그럼에도 의문이 하나 생긴다. 왜 최고의 협상일까? 사안이 크고 중요하다고 최고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협상의 핵심 개념에서 찾는다. 바로 협상은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는 명제 말이다.

질문 하나 해보자. 조지 퍼킨스가 저작권자를 설득한 일이 있는가? 그렇다. 조지 퍼킨스는 저작권자를 설득한 일이 없다. 저작권 사용에 동의하고 후원금까지 낸 것은 저작권자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협상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협상은 상대를 설득하지 않고, 상대방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루스벨트 저작권료 협상 사례는 바로 그 점을 알려준다. 가히 20세기 최고의 협상으로 부르기에 충분한 이유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떻게 하면 상대를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가 협상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생각이다. 상대를 설득해 내 요구를 관철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나에게 더 이익이다. 우리의 본성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협상을 잘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바로 이 점이 협상을 망치는 근본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협상은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는 나의 말이나 꼬임에 설득되지 않는다. 상대를 설득하고자 하는 심리는 내 욕심이고 착각일 뿐 결과적으로 독이 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나는 누군가에게 설득을 잘 당하는가? 그렇지 않다.

설득이 ‘당하다’라는 동사와 연결되는 것만 봐도 썩 유쾌한 일이 아니란 방증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설득을 방어하려 한다. 상대의 방어막을 뚫고 내 뜻대로 상대 결정을 바꿀 수 있다고? 욕심이고, 착각이다. 상대를 설득하려면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오명호 칼럼니스트는 기업협상교육 전문회사 <열린협상연구소> 소장이다. 삼성그룹, 신세계, KCC, 한라, 동원, 아모레퍼시픽 등 기업 실무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협상 실습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지자체인재개발원, 법무연수원 등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갈등관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한 수>와 <협상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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