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효석 칼럼니스트] ‘플라시보(placebo)’는 위약(僞藥) 또는 속임약을 뜻하는 말로 심리적 효과를 위해 환자가 의사의 치료를 받아들이지만, 약효는 전혀 없는 가짜 약제를 의미한다. 여기에 ‘소비’가 결합한 말로,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이란 의미의 ‘가심비(價心費)’를 추구하는 소비를 뜻한다.

불황, 불신, 불안의 시대에 소비자들은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점점 더 좋은 성능을 추구한다. 즉, 소비자는 자신이 선택한 상품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믿음을 갖게 되면, 플라세보 효과처럼 상품의 성능과는 상관없이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가성비(價性費)에 따른 소비자들이 ‘싸고 품질 좋은 제품’만을 원했다면, 가심비 소비는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제품’이 우선이 된다.

그렇다고 플라시보 소비가 가격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가격이라는 분모를 줄이는 것 보다 만족이라는 분자를 늘리는 것이다. 심리적 만족을 높이는 것은 덕질로 일컬어지는 ‘굿즈’, 스트레스 해소에 사용되는 ‘당진 소비’ 등이 꼽힌다. 2017년 유해 생리대 파동이 일어난 후 일반 생리대에 비해 2~3배나 높은 가격의 100% 천연펄프 생리대가 품귀 현상을 빚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살충제 달걀, 옥시 사태, 햄버거병 등 건강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지속해서 발생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은 높지만, 환경오염으로부터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우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하나의 예는 바로 ‘덕질’ 소비다. 애정을 갖는 대상에 대해서 소비자는 합리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아이돌 등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와 연관된 상품을 ‘굿즈’라고 하는데, 과거의 기념품 개념에서 벗어나 기억하고 싶은 의미에 대한 투자를 즐기는 사람들의 소비도 ‘플라시보 소비’에 해당한다. 신조어로 떠오른 ‘시발비용’ 또한 같은 의미의 소비이다. 기분이 좋았다면 지급하지 않았을 비용, 예를 들어 스트레스가 심해 홧김에 고급 미용실에서 파마하거나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화가 난 날은 택시를 타는 비용이 바로 시발비용이다.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소비를 한다면 가격과 성능만 생각할 수 없다. 어느 정도 허세를 보이는 서비스를 구매할 때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평상시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다가 특정한 소비에 아낌없이 소비하는 ‘몰아주기’식 쇼핑을 하기도 한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상품을 사는 것은 경제학 논리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이익보다 손해를 싫어하는 행동경제학 논리에서 볼 때 가심비는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는 자신이 애정을 형상화한 대상에 대해서는 경제적 합리성 여부는 따지지 않는 마음이 숨어있다. 영업인은 이 같은 소비자의 마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가성비를 추구하던 현명한 소비자들이 플라세보 소비를 하는 이유는 돈을 쓰는 목적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소확행(小確幸), 혼자라도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는 ‘혼밥’, ‘혼술’ 등 최근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소비를 통해 작은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플라시보 소비’를 주도하는 소비자는 ‘밀레니얼 세대’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하였고 저성장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가족의 해체, 과도한 경쟁, 각종 사건, 사고가 빈발하는 현실 속에 커왔다. 타인과의 관계망이 공고했던 과거와는 달리 초개인주의 사회에서 마음이 공허해진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위안받을 수 있는 방법은 소비인 것이다. 이렇듯 상품의 기능보다 소비자의 감정이 우선시 되는 트렌드에 맞춰 기업들도 소비자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통신업체 AT&T의 콜센터에서는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해 고객의 감정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음성인식 시스템은 고객과의 대화를 음성 인식해서 고객이 화가 났는지 등 감정을 파악하고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한 후 상황에 적합한 답변을 상담원에게 알려준다.

페이스북은 ‘감정 예측 기반의 문자 메시지 제안’이라는 특허를 출원했다. 이는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사용자의 타자 속도, 사용하는 단어, 키보드에 가하는 압력 등의 요인을 분석해서 알아내는 것이다. 감정 분석이 끝나면,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작성하는 문자 메시지의 글자 모양, 크기, 간격 등의 형식을 바꿔 사용자에게 제안하게 된다. 가심비 중심의 소비 패턴은 소비가 결핍의 충족이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소비 주체의 감성을 충족시켜야 하는 고차원의 단계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 참고자료 : 『강사 트렌드 코리아 2019(지식공감, 2018.10.9)』

 

김효석 칼럼니스트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김효석&송희영아카데미 대표, 평화방송 MC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강사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한국케이블TV협회 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상, 사랑의쌀 나눔대상 자원봉사부문 개인 우수상, 대한민국 국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로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최초의 강사 트렌드 분석서인 『강사 트렌드 코리아 2019』(공저)를 비롯해 『OBM 설득마케팅』, 『불황을 이기는 세일즈 전략』, 『카리스마 세일즈』, 『세일즈전사로 다시 태어나기』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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