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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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김지영 기자] PD가 된 소년의 전원일기. 젊은이들에겐 신박하고 쿨하며, 기성세대들에겐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이야기. 굴절 많았던 시대를 관통하며 어스레한 해남 산골에서 문화의 한낮인 여의도(KBS)까지 오는 길이 어찌 순풍에 돛단 듯하기만 했겠는가.

더구나 그는 지천명의 연대에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이어서 사진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이제 수필가로 데뷔, 나의 문단 후배가 되었다. 그의 수필들은 정직하고 질박하며 다감하다.

PD에서 사진가-수필가로까지 지향을 계속 넓혀온 뜨거운 열정을 지녔으면서 여전히 사람에게 따뜻하고 자기 직분에서 성실한 건 그가 근본적으로 선근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착한 사람, 성실한 방송인, 감각적 사진가, 다감한 수필가이다. 이 책에서 그 면모의 지층을 만날 수 있다.

저자 김병진의 《PD가 된 땅끝 소년: 큰글씨책(가쎄, 2022.04.28.)》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런 내가 서울에 와서 방송국 PD가 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해남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개천에서 용이 난 거라며 놀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가족들마저 내가 땅끝마을 출신이라는 것만 알 뿐이지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살면서 힘들게 농사지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열등의식이 때론 큰 힘이 되는 법이니 말이다. 창피했던 그 일은 어느 순간 더는 슬픔이란 감정으로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방송국에 입사한 것도, 세계의 수도 격인 워싱턴 D.C.에 간 것도 그 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땅끝 해남 옥천면 용동분교 뒷산에서 꺾어 만들었던 싸리비의 힘 말이다.

그러던 내가 해가 거듭되면서 까치밥 남겨두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습관처럼 익숙해진 것이다. 더불어 처음 느꼈던 아쉬움은 점차 넉넉함으로 변해갔다. 그 덕에 하얀 눈이 내리는 날 까치들이 잔치를 벌이듯 빨간 홍시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겨움이 느껴졌다. 마치 연말에 돼지저금통을 털어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내는 기분이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가슴이 아프고 소가 그리워졌다. 고맙기도 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몇 시간을 이리저리 뒤척인 끝에 새벽녘이 되어서야 오랫동안 쌓여왔던 소와의 정을 정리하고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소와 헤어지는 것은 가축이 아닌 가족과의 이별이었다.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책상에 잠시 엎드렸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눈물이 났다. 어른이 되면 ‘절대로 농사는 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잠들고 말았다.

“자, 주목! 애들아, 이 그림 좀 봐라. 밀레라는 프랑스 화가 작품인데 어때 보여? 이삭을 줍는 거잖아,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을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은 없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나에게 그렇게 힘들고 슬펐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농사일과 농부들을 보는 시선을 엿볼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 본문 중에서

[사진출처=가쎄]
[사진출처=가쎄]

저자 김병진은 땅끝 대흥사 두륜산 기슭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분교를 졸업했다. 해남중학교와 광주 광덕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 영문과에 진학한 후 KBS PD로 입사했다. 입사 15년 차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1년간 연수하며 북한 문제를 연구했고, 귀국 후에는 상명대학교 디지털이미지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방송국에 입사해 KBS 라디오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를 시작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HOT의 강타, 신화의 신혜성, 홍경민 등이 진행하는 청소년 대상 음악·오락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연출했다.

뉴욕 라디오 페스티벌 다큐멘터리 부분 동상을 비롯해 한국방송프로듀서협회 작품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프로그램상(4회)을 받았고, 장애인의 날 기념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표창, 대한민국나눔대상 국가인권위원장표창, 도전한국인대상을 수상했다. 국방일보 고정 필진으로 활동했으며, 2021년 〈한국수필〉 10월 호에 수필가로 등단했다.

현재는 KBS 라디오에서 〈소설극장〉, 〈심준구의 세상보기〉를 연출 중이며, 한국콘텐츠학회 부회장, 한국사진학회 운영위원, 재경광덕고등학교 총동문회장, 재경광주전남고교연합회 수석부회장, 호남미래포럼운영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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