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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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오명호 칼럼니스트]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이 있다. 친구와 싸워 코피를 터뜨렸는데 병원비를 물어줘야 한다면 결국 이긴 게 아니라는 뜻이다. 주말 집안일을 누가 할 것이냐를 두고 아내와 협상을 벌여 이겼는데, 난데없이 다음 달부터 용돈을 깎겠다고 나온다면 이긴 게 이긴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 앞뒤 사정 안 가리고 승부에 집착하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른다. 별거 아닌 일로 옥신각신 시비를 가리기보다 너그럽게 양보하는 것이 현명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매번 인심 써가면서 양보하는 게 협상을 잘하는 것일까? 그건 다른 문제다. ‘양보가 미덕’이라는 말을 무조건 양보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덮어 놓고 양보하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K대표는 강사를 섭외해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를 여는 스타트업 CEO다. 인기 강의를 개설해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게 사업의 핵심이다. 그런데 강사들의 불만을 처리하는 일이 고민이다. 스스로 사인까지 한 계약 내용에 자꾸 불만을 표시하며 딴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K대표는 억울했다. 계약 내용을 어기긴 커녕 오히려 약속보다 더 잘해줬기 때문이다. 결제도 말일이 원칙인데, 늦어도 강의 후 일주일 내로는 처리를 해줬다. 그 후로 강사들은 조금만 늦어도 불만을 표시했다. 게다가 강의료가 적다는 둥, 시간을 초과해서 강의를 했다는 둥 사실과 다르게 안 좋은 소리를 하고 다녀 속상했다.

원인은 섣부른 양보에 있다. 양보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상대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으로 이어진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얘기는 그 경험이 축적된 말이다.

결국 좋은 뜻으로 한 양보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그르치게 되는 셈이니, 양보를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협상에서 양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현명하게 양보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양보는 어렵게 해야 한다. 쉽게 얻은 양보는 값어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상대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상대는 “어라? 쉽게 양보하네. 그렇다면 더 큰 양보를 받아 낼 수도 있겠는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때문에 이번 양보가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메시지를 함께 담아야 한다. ‘특별 혜택’에 사람들은 더 만족한다.

둘째, 공짜 양보는 금물이다. 대가 없는 양보는 역효과를 불러온다.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한다면 그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좋다. 협상은 주고받는 게임이다. 호의를 받으면 보답하고자 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상호성의 법칙’이다. 따라서 양보는 우리 쪽에서 원하는 조건을 받아낼 기회이기도 하다. 거래처와의 계약 협상에서 단가를 양보하는 대신 수량이나 기간을 늘려 달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상대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요구만을 고집하기는 힘들다.

셋째, 쪼개어서 양보해야 한다. 양보는 트럼프 게임에서 조커와 같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카드다. 조커는 한 장의 파워 보다 장수가 중요하다. 한 번의 큰 양보보다 여러 번의 양보가 상대에게 더 큰 만족감을 준다.

따라서 협상 전에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카드가 어떤 게 있는지 잘게 쪼개 준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양보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협상 기술은 없다. 덜 중요한 것을 내어주고 더 중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이 노련한 협상가들의 전략이다.

끝으로, 양보의 크기는 점점 줄여나가야 한다. 협상이 길어질 경우 여러 번의 양보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양보의 폭이 커진다면 상대에게 더 큰 양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셈이다. 양보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은 더 이상의 양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고수는 양보의 크기도 사전에 계획한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오명호 칼럼니스트는 기업협상교육 전문회사 <열린협상연구소> 소장이다. 삼성그룹, 신세계, KCC, 한라, 동원, 아모레퍼시픽 등 기업 실무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협상 실습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금융연수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지자체인재개발원, 법무연수원 등 공공기관 및 공직자를 대상으로 협상 및 갈등관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한 수>와 <협상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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