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살의 아날로그’는 몸으로 느끼는 감촉입니다. 대상에 대한 가장 정직한 느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표현이 가능할 뿐이죠. 표현이 불가한 특정한 상황에서 직감적으로 다가온 느낌이나 찰나의 순간에 문득(聞得) 드는 생각,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았던 교훈이나 체험적 노하우를 고스란히 언어로 전환하거나 번역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몸에 남아 있는 깨달음의 흔적은 언어화를 거부합니다.

“우리 섬의 어른들은, 비록 오뉘죽의 맛에 날카롭지는 못했어도, 소금 그 자체의 맛에는 너나없이 귀신들이었다. 소금 한 알갱이를 입에 넣으면, 섬의 동쪽 염전 소금인지 서쪽 염전 소금인지, 초여름 소금인지 늦가을 소금인지, 어김없이 알아맞혔다.”<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존 듀이의 ‘질성적 사고’를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대목이지요. 오랜 경험의 반복으로 혀가 감각을 기억하고 알아맞히는 현상을 언어적 표현의 차이로 분간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맛의 차이로 소금의 출처와 시기를 판별하는 능력은 논리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적 각성의 과정입니다.

소금 맛을 분간해내는 어른들의 노하우는 어떤 지식이나 이론을 체계적으로 축적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저마다 다른 상황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몸으로 깨닫는 지혜에 가깝습니다. 역시 언어화시킬 수 없는 체화된 앎의 세계, 가르칠 수도 없고 일정한 틀을 갖춘 매뉴얼로도 문서화시킬 수 없는 앎입니다.

몸이 입증하는 것은 살이 직접 접촉하면서 느끼는 감각적 체험의 흔적입니다. 머리로 기억하는 경험이 아니라 몸이 직접 접촉하며 얻는 느낌을 논리의 이름으로 판별해내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던 경험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한눈에 반했는지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지 않나요? 느낌은 앎 이전에 오면서 앎을 능가하는 심오한 직관과 통찰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폴라니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암묵적 지식입니다. 존 듀이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질성적 사고가 동반되는 이차적 경험입니다. 질성적 사고는 논리적 앎이 아니라 감각적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고입니다. 우리가 결혼 상대를 결정할 때 마치 여러 변수를 놓고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은 느낌에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 사람 정도면 평생을 같이 살아도 되겠다는 느낌이 올 때 이전의 논리적 사고로 결정했던 많은 변수들을 덮어버리지요. 이런 첫 느낌이 질성적 사고이고 암묵적 지식인 것입니다.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한 줄의 글이 위로가 된다면』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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